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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바느질로 50년 세월 뜨고 엮은 곳
12월이 되자 어김없이 날씨예보에 ‘한파’ ‘칼바람’ ‘최저기온’ ‘첫눈’이 등장하더니 제법 겨울다운 날씨가 이어진다. 싸늘해진 공기가 닿지 않는 가장 안전한 이불 속에서 느릿느릿 꾸물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최대한 여유 부릴 수 있을 만큼 늦장 부리다 겨우 외출에 나서면 맵싸한 바람에 절로 옷을 단단히 여미고 추스르게 된다. 겨울이야말로 새삼 한 겹 덧입은 옷의 고마움을 느끼는 계절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꽃네수예점 김순점(왼쪽) 대표가 수예점을 찾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사람만 추우랴. 찬바람이 불면 거리의 나무들은 겨울옷 ‘잠복소 (潛伏所)’를 입고 초가엔 이엉을 얹는다. 천사만물(千事萬物)이 시릴까 눈길 닿는 곳곳에 옷을 입혀주는 따뜻한 공간이 있다. 이곳의 주전자, 술병, 다기, 서랍은 모두 실로 뜨고 엮은 옷을 갖춰 입었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뜨개질, 자수를 50년 가까이 이어온 마산 꽃네수예점 김순점(79) 대표에게 이 공간에서 피어난 재미난 이야기와 따뜻한 에피소드를 물어봤다.
마산 부림시장과 어시장 길목인 수성동에 위치한 이곳은 화려한 영광을 누리던 그 시절이 그대로 멈춰있는 듯했다. 색 바랜 푸른색 배경에 요즘 간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엠보싱처럼 올록볼록 튀어나온 ‘꽃네수예점’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팔레트에 뿌려놓은 물감처럼 화려한 색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좁다란 가게엔 손님을 맞는 작은 소파 하나와 앉아서 미싱을 돌리는 작업대를 제외한 곳곳에 수예작품들이 빼곡하다.
간판을 보자마자 평소에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인 ‘꽃네’를 상호로 쓴 까닭이 궁금했다. 주인장은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우연히 라디오에서 ‘꽃동네’라는 단어를 듣게 됐어요. 꽃이 많이 피어 있는 동네, 정겹고 화목한 동네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꽃네라고 지었는데, 촌스럽나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마산합포구 수성동 꽃네수예점.
그의 말대로 이곳은 꽃 같은 소녀들이 정겹게 드나들던 곳이다. 마산 출신 중년여성들이 여고생일 때 나름 ‘핫플레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오랜 단골이라는 노갑선 수필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수필집 ‘꽃등’에 수예점을 글감으로 한 글을 싣기도 했다. 노 수필가는 “아기자기 예쁜 물건도 많았지만 사실 수강들로 더 유명했어요. 워낙 솜씨가 좋고 꼼꼼한 데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거든요”라고 말했다.
김순점 대표가 재봉틀로 바느질을 하고 있다.
당시엔 ‘수예’가 정식 교과목 중 하나여서 바느질이 필수였다. 손재주 좀 있다 싶은 소녀들은 꽃네에 자주 드나들었다. 뜨개질은 기본이고 한국자수, 서양자수, 레이스 달기까지 수강생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 수예점과 달리 정식으로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숙명여대 가정과를 나와 마산제일여고에서 10년쯤 가정 교사로 재직했다. 건강상 이유로 선생님은 그만뒀지만 수예점에서 계속 수업을 이어갔으니 재야에서 제자들을 계속 양성한 셈이다.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하나는 경남에서 수예로 1등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전국 단위 수예대회에서 금상으로 상금 천만원을 받기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4층짜리 건물 1층 한 모퉁이에 자리한 이곳은 원래는 규모가 더 컸다고 한다. 수예가 교과목에서 빠지고 프랑스 자수, 퀼트 등이 인기를 끌면서 수예는 자연스레 인기가 예전만 못했다. 세 칸짜리 가게는 두 칸으로, 또 한 칸으로 줄어들었다. 중심상권이 옮겨가면서 오가는 발길도 줄었다. 옆 가게와 그 옆 가게도 모두 임대를 내놓았단다. 그는 “여러모로 힘드니까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가게 안에 있는 물건들을 따로 보관할 장소를 찾는 것도 마땅찮고 옛 추억에 허탕치는 손님 있을까 염려되더라고요. 그래서 힘 닿는 데까지는 문을 열어놓을 생각입니다”고 말했다.
노포의 크기는 8평 남짓으로 줄었지만 그동안 차곡차곡 모으고 작업한 옛 영광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게 왼쪽 한편에는 주머니가 줄줄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노리개가 열을 맞춰 있다. “한복 입을 때 이쁘라고 하는 장신구인 노리개는 사실 의미가 다 달라요. 향가루를 넣은 향낭 노리개도 있고요, 부녀자의 호신용 칼인 장도 노리개도 있어요. 부귀영화를 뜻하는 석류를 매달기도 하고 환생을 의미하는 매미를 달기도 하고요. 알고 보니 더 재미있지요?” 내친김에 김 대표는 관혼상제 의미를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중요한 네 가지 예식을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하는데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란다. 알아듣기 쉽게 성인식과 결혼식, 장례식, 제사라고 했다. 주인은 우리나라 결혼문화와 풍습에 대해 자세히 읊었다. 어떻게 이렇게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설명하는지 궁금했다. 예지원 마산지부가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째 전통혼례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부원장이라고 했다. 우리 옷,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공부하게 됐는데, 가게를 찾는 손님의 권유로 예지원과 인연이 시작됐다고 했다.
김 대표가 만든 수예작품.
김 대표가 만든 혼례용 기러기 싸개.
수예를 배우거나 작품을 사러 오는 손님이 줄어든 대신 함을 사는 이들의 발걸음이 늘었다. 격식을 차려 함을 싸주기로 이름 나서다. 예전에는 함에 혼례식 때 입을 옷을 지을 수 있는 옷감을 보냈는데 요즘은 한복을 넣는다고 했다. 여기에 쌍가락지, 혼서지, 오곡낭 등을 함께 넣어보낸다. 또 기러기 한 쌍도 보내는데, 기러기를 천으로 쌀 때는 부부의 앞길이 태평하도록 다 틀어막지 말고 한쪽 방향은 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만든 반짇고리.
김 대표가 만든 반짇고리.
가게의 출발과 함께한 진열장과 미싱은 여전히 반질반질 윤이 났다. 매일같이 미싱 앞에 앉아 천을 덧대고 실을 꿰는 일을 해서 손길이 닿기 때문이다. 수예점을 찾았을 때도 이것저것을 싸는 용도인 오방색 조각보를 잇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실과 바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전히 즐겁다며 웃었다. 주인장은 스크린 터치에 익숙해진 손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바느질을 해보는 것을 권했다. 뜨개질을 하면 디지털 기기로는 배울 수 없는 감각과 촉감,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예찬을 폈다.
김 대표가 가게 시작과 함께 사용 중인 재봉틀.
김 대표가 가게 시작과 함께 사용 중인 도구.
“이건 술병이 옷을 입은 것 같죠? 술 따를 때 흐르지 말라고 천을 씌워놓은 거예요. 옆에 있는 것은 홍차 주전자인데요, 온도가 식지 말라고 싸놓은 거지요.” 수예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가게 곳곳에 있는 물건들을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추억의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든 수예작품들을 보다가 불현듯 ‘엄마표 목도리’가 생각났다. 그땐 왜 삐뚤삐뚤하다고 투덜댔는지. 찍어낸 듯 매끄럽지 않아도 폭신하고 따뜻한 목도리를 떠올리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올겨울 ‘소확행’으로 뜨개질을 해보길 권한다. 코바늘, 대바늘 무엇이라도 상관없고 손 매무새가 야무지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한 코 한 코 뜨다가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어려운 난관에 부딪힌다면 50년 동안 갈고닦은 수예 선생님이 기다리는 ‘꽃네수예점’으로 달려가면 된다. 오늘도 이곳은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남녀노소 누구라도 함께 뜨개질하고 이야기 나누는 따뜻한 감성공간으로 쓰임을 다하고 있다.
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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