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낙동강변 창원 대산 유등마을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강둑에 서서 주황 햇살이 비치는 나의 제2고향 유등, 유청마을을 바라보니 우뚝 솟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하얀 미술관 건물 사이로 지나온 19년 세월 추억의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자연이 스승이라고 했던가, 세월이 유수라고 했던가, 뒤돌아보니 모든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내가 고향도 아닌 이곳에 전원미술관을 건립한답시고 1998년 외환위기 때 아파트 팔고 융자 내서 문 닫은 라면스프 공장을 지인의 소개로 낙찰받아 둥지를 튼 지 19년, 그동안 순수 사비로 운영해오면서 어느새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런 연고 없이 낯선 유등마을 고즈넉한 초창기 전원생활은 한때 미술관 입구 딸기 창고 건립 문제로 마찰을 빚어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해 달집 태우던 정월대보름날 마을촌장 안씨 어른께서는 주민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제 우리 김 교수, 유등주민 아이가’ 한마디 하시면서 5년 만에 진정으로 주민 인정을 공식 선포하셨던 날과 개관 후 8년 준비 끝에 경남에서 두 번째로 제1종 사립미술관으로 등록했던 2007년 1월 3일은 창원시문화예술특별시 선포일보다 훨씬 더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9년 동안 낙동강다원예술제 특별전 연간 380만원 지원 외에는 창원시의 운영비 보조 한 푼 없이 사비와 공모사업으로 그동안 113회의 기획초대전 (약 1700여명 참여)과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예술플러스체험교실, 찾아가는 미술관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했고, 홈페이지 개설 후 조회수는 670만 건에 이르고 있다. 어렵사리 이어져온 농촌미술관의 애환과 우여곡절, 그리고 순수한 작가들과 휴머니즘 넘치는 감성파 방문객들과 후원자님들의 “나는 가끔 이 섬을 찾고 싶다”라는 한 줄 격려에서 난 오늘도 큰 위로를 받으며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김철수 (창원문성대 교수·대산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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