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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술에 반하다 ① 창원 북면 막걸리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4.1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571
내용
경남의 술에 반하다 ① 창원 북면 막걸리
물·술밑·온도·정성이 술술 어우러진 맛 “캬~좋다”

-경남신문-

전통주는 우리 땅에서 나는 특산물을 이용해 전통 양조방식으로 만들어진 술로, 오랜 세월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위스키나 와인 등 수입된 술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전통주가 최근 막걸리의 인기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도내에서 생산되는 전통주 중 도내의 특산물을 이용하거나 주목할 만한 특징을 가진 전통주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전통주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도내에는 지리산 백송주, 국화주, 남해 유자주, 합천 고가소주, 밀양 교동방문주, 청솔주, 홍로주, 머루주, 복분자주, 포도주 등 지역별로 지역색을 살린 다양한 전통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경남도에 등록된 전통주 제조업체만 해도 50여 곳이 넘어 전통주 붐을 실감케 한다.

시리즈 첫 순서는 요즘 폭풍 같은 인기를 몰고 다니는 막걸리로 시작하기로 했다. 예부터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잔치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던 토속주 막걸리는 값싼 술, 속이 불편한 술, 머리가 아픈 술 등의 이름으로 술자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저도수, 발효주로 최근 웰빙 라인에 올라타면서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막걸리 개발로 맛과 질이 향상되면서 국내외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지역에도 창원 생막걸리, 진해 군항주, 마산 진동막걸리 등 다양한 종류의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 그 가운데 손두부와 함께 별미로 손꼽히는 창원 북면의 막걸리를 소개한다.

해가 제법 길어졌다지만 아직 어스름한 새벽녘, 시멘트가 투박하게 덮인 좁은 촌길을 달려 창원 북면 무곡에 위치한 ‘무곡주조장’에 도착했다. 낮은 산비탈에 지어진 주조장에 들어서니 ‘북면 천주산 쌀 막걸리’를 만들어내는 무곡주조장의 심양섭 대표가 작업복 차림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긴 말을 할 것도 없이 막걸리 구경에 나서기로 했다.

작업실로 들어서니 막걸리 특유의 향이 마치 구경꾼에게 신고식을 요구하듯이 코를 톡 쏘았다. 고두밥을 찌고 있는 대형 솥이 쉴새 없이 김을 뿜어내 실내는 온통 뿌연 수증기로 가득차 있었다. 천연 수분 마사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효주인 막걸리는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모(술밑:술의 원료)를 띄우고 자체 발효되어 술로 완성될 때까지 요즘 같은 봄, 가을철에는 4~5일이 걸린다. 맛있는 막걸리를 빚기 위해서 이 발효 주기 계산에 세심해야 한다. 이미 발효실에는 10개 정도의 대형 통에 저마다 발효 상태가 다른 예비 막걸리가 담겨 있었다.

막걸리 제조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모를 만들 밀가루를 찌는 것이다. ‘주모’란 고두밥에 더해져 숙성시켜 술을 만드는 주재료다. 쪄낸 밀가루를 넓은 통에 담아 주모실로 옮겨 식힌다. 그다음 입국(곰팡이류)을 넣고 섞은 후 봉지에 나누어 담아서 밀봉시킨다. 그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면 주모가 제 역할을 못하므로 매우 신경 써야 할 작업이다. 1~2일 그대로 두면 입국이 띄워져 주모가 만들어진다. 완성된 주모를 대형 통에다 넣는다. 이것을 1단 사입이라고 부른다.

고두밥과 주모의 비율은 큰 솥 180kg에 5kg 정도면 적당하다. 보통 주도가 6.5~7.5% 사이여야 잘 만들어진 막걸리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고두밥을 찐다.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마다 고두밥을 찌는 방법은 다르다고 한다. 쌀 100% 또는 밀가루 100%만으로 고두밥을 짓기도 하는데 북면 쌀막걸리는 쌀과 밀가루를 1대 1로 섞어 고두밥을 만든다. 쌀은 미리 불려두고 밀가루는 반죽한 뒤 갈아서 넣고 섞은 뒤 30~40분간 찌고 10분간 뜸들인다. 퍼낸 고두밥은 적당히 식혀준다.

심씨는 “막걸리 만드는 집마다 제조법은 다 달라요. 내가 막걸리를 만들어보니, 밀가루와 쌀의 비율이 반반 정도로 적당히 섞이니깐 술맛이 더 좋더라”며 나름의 비법을 전했다.

갓 쪄낸 고두밥을 여러 차례 뒤집어 엎으면서 식히고 그동안 1단 사입된 통에 물을 채우고 누룩을 넣어 섞는 2단 사입 과정을 거친다. 열기가 거의 빠진 고두밥을 2단 사입한 통에 넣어 젓는다. 사람의 손이 가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앞으로 4~5일간은 주모와 고두밥 반죽이 발효되면서 스스로 열을 내면서 섞이고 차츰 막걸리에 가까워진다. 예비 막걸리들이 마치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 ‘폭폭’, ‘톡톡’, ‘팍팍’하며 소리를 냈다. 이 과정에 예비 막걸리는 25~26℃까지 스스로 올라갔다가 발효 3~4일이 되면 스스로 온도가 낮아진다고 한다.

심씨는 “온도가 맞아야 자동으로 위 아래가 휙휙 섞이면서 발효가 잘 되는 거요. 우리 같은 전문가야 딱 보면 알지만 일반인들이 보면 이게 얼마나 발효가 된 건지 알기가 힘들어요”라며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효 동안에는 따로 손 쓸 일이 없지만 발효 1일차, 2일차, 3일차가 다 다르기 때문에 신경을 엄청 쏟아야 막걸리가 제대로 만들어져요. 아까 발효 통에서 폭폭 하고 소리가 들리지요? 얘들도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막걸리도 사람 말을 듣는답니다. 꼭 자식 키우는 것 같아요”라고 그는 막걸리 만드는 일을 자식 키우는 일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그는 막걸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을가. 약 40년 전이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고 있던 16세 소년에게 때 아닌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마을로 막걸리 배달을 나왔던 주조장 사장이 성실히 일하는 심씨를 눈여겨봤던 것이다.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지만 농사일보다는 술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 후로 전국을 돌며 주조 기술을 습득했다. 2000년에 본인의 주조장을 건립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손두부 공장까지 지어 막걸리와 손두부 콤비를 매일같이 만들어내 각지에 배달하고 있다.

5일간의 발효기간을 마친 예비 막걸리는 재생과정을 거쳐야 한다. 건더기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순물을 거르는 단계다. 깨끗하게 걸러진 예비 막걸리에 물을 넣어 희석시키고 단맛을 내는 첨가물을 더해 저어주면 진짜 막걸리가 완성된다. 2단 사입 과정에서도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가지만 재생 단계에도 많은 양의 물이 사용된다. 물 좋은 곳의 술이 맛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성된 막걸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쭉 살펴보니, 깨끗하고 맛좋은 물과 적당히 뜬 주모, 물의 배합과 온도 조절 등이 일체가 되어야 목 넘김이 부드러운 북면 쌀막걸리가 탄생한다. 이 모두가 심씨 만의 노하우로 완성된 막걸리 제조 기술인 것이다. 완성된 막걸리는 병에 넣어져 포장되고 금방 판매소로 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북면 쌀막걸리는 경남 전역은 물론이고 부산 70여 곳, 울산 40여 곳 등 찾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최근에는 김해 봉하마을에서 받은 봉하오리쌀과 우렁이쌀로 막걸리를 빚어 봉하마을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맛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판매고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어떤 음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다. 보통 20여 일 정도라고 병에 표시가 되지만 살균처리를 거치면 6개월 정도로 길어진다. 베트남 수출을 목표로 살균기계를 들여 놓았는데 올 여름 정도면 설치와 시운전을 마치고 베트남 수출길에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막걸리 브랜드가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심씨는 자신의 막걸리와 비교를 거부했다.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막걸리 본연의 맛을 살린데다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북면 쌀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첨가물이 조금만 들어가도 톡! 하고 쏘는 맛이 납니다. 다양한 변신이 막걸리 붐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막걸리는 순수한 막걸리 그대로의 부드러운 맛이 최고지요.”

그는 아직도 맛있는 막걸리가 있다고 소문난 곳이 있으면 한걸음에 달려가 맛을 보고 온다고 한다.

“요즘 막걸리는 냉장보관하지만 보통 상온 3~4℃에서 보관할 때, 만든 당일에서 3일까지가 가장 맛있을 때이다. 겨울철에는 7~8일까지도 맛이 괜찮다”며 막걸리를 맛있게 마시는 법을 귀띔했다.

심씨는 “요새 막걸리를 흔들지 않고 드시는 분도 많은데, 사실 아래쪽에 가라앉은 성분이 더 좋은 것이니 흔들어 드시라”며 “여기에 갓 만들어낸 뜨끈뜨끈한 손두부에 김치를 얹어 한입 먹으면 꿀맛 중에도 꿀맛이다”며 자신이 만든 막걸리와 손두부에 대한 자랑을 한참 동안 늘어놓았다.

눈앞에 놓여진 뽀얀 막걸리와 하얀 손두부, 익은 김치를 보고 앉아 있자니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막걸리 사발을 얼른 집어 들었다. 망설임없이 한입 쭈욱 들이키니 목이 맛을 먼저 알아보고 어서 넘기라고 재촉했다. 맛에 반해 한 사발을 거침없이 비우고 나니 그 맛에 반해 통에 그려진 진달래마냥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

글=김희진기자 likesky7@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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