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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유등골목 기획자 강선녀 씨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10.2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525
내용
"아름다웠던 골목, 유등보다 주민 참여 덕"



진주 남강유등축제가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전국체전까지 함께 열리면서 진주는 그야말로 행복한 축제의 도시가 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달리 눈에 띈 것은 골목길에 켜진 유등이었다. 유등을 골목으로 옮긴 신선한 의도는 '유등은 강에만 있는 것'이란 고정관점을 깬 사건이었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을까. 궁금하던 차에 행사를 기획한 강선녀(36) 씨를 만났다.




[유등골목 아이디어 문화부 시범 프로그램 선정]

강 씨는 유등축제장에서 몇 년간 창작 등 교실을 운영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던 중 골목길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마침 진주 YMCA에서 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냈다.

진주 YMCA와 강남동 주민자치센터가 공동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 사업 프로그램에 '365 모두의 축제마을 진주 강남 만들기' 사업을 응모해 당선됐다. 이 사업은 어르신 창작 유등 제작교실 운영과 창작 유등 문패 달기 등 주민 주도로 특색 있는 골목길을 조성하고 강남동의 마을축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마을의 유휴 인력을 창작 유등 제작 전문가로 육성하고, 축제에 쓰일 유등을 제작하자는 의도도 있었다.

강 씨는 이번 사업에서 '365 모두의 축제마을 진주 강남 만들기 추진위 공공기술팀장'이라는 긴 직함을 가지고 활동했다. 줄이면 주민들에게 유등의 기초부터 완성까지를 가르친 '유등 선생님'이다.

강 씨는 유등 축제와 묘한 인연이 있다.





[강남동 4통 일대 150여 개 유등 장식으로 호응]


대학 때 조각을 전공한 후 인도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석사 학위 논문으로 '지역 축제와 주민 참여,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썼다. 진주로 돌아왔는데 마침 유등 축제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등 축제가 바로 자신이 쓴 논문과 일치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동참했다. 유등 축제장에서 창작 등을 만드는 부스를 운영했다. 당시는 중국인들이 유등을 만드는 바람에 유등이 중국풍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등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강 씨도 참여했다. 그리고 몇 년간은 유등의 현대화를 시도하는 작업을 했다. 창작등 유등교실을 운영하면서 도우미가 필요했는데 해마다 사람이 바뀌면서 기술이나 노하우가 전수되지 못했다.

강 씨는 "축제는 주민들과 상관없이 흘러가고 기술 전수는 안 된다. 동네 주민이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 그러면 진정한 주민참여 축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를 자주 했다. 마침 진주YMCA에서 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했고 유등 골목이 탄생했다.

강 씨는 "처음 사람을 모으는 게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한창 더운 여름에 동네 활동가 40~50명을 반강제(?)로 주민자치센터에 모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에게 기초부터 가르쳤다. 가장 쉬우면서도 면 분할을 배울 수 있는 수박 등과 문패를 만들었다. 문패 유등이 집 앞을 밝히면서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때부터 탄력이 붙어 축제 직전에 주민이 만든 유등만 150개가 넘었다.




[골목길 재발견과 함께 주민이 축제 중심으로]

유등 축제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달 29일 150개의 유등으로 강남동 4통 골목 일대를 장식했다. 역시 주민 참여로 이뤄진 골목 사진 40여 작품도 전시됐다. 등에 불을 밝히자 죽어 있던 후진 골목이 '작품'으로 탄생했다. 1960~7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숨기고 싶었던 골목길에 '이 골목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강 씨는 "골목길을 재발견한 것이 수확이다. 막상 골목길에 유등이 켜지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많은 것을 되찾았다. 특히 주민들이 축제의 한복판에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지금까지 남의 축제라 귀찮게만 여기던 주민들이 이제는 유등의 홍보대사가 돼 스스로 참여하고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유등을 만드는)동력을 가지게 된 것도 수확이다. 유등을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어르신들이 창작 등 교실에서 강사 역할을 하면서 실력이 부쩍 늘었다. 몇 년만 지나면 자체적으로 뭔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자랑했다.

강 씨는 "2년 전 동네에 카페를 열었지만 주민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다. 4개월 동안 선생님 역할을 하다 보니 이제는 행동에 제약이 많아졌지만 싫지 않다. 어르신들의 무한한 포용력을 보면서 역시 어른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사람에 소홀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경남도민일보_김종현 기자 kimj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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