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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술가-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작성자
강소연
작성일
2011.01.17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341
내용

예술가(1)-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선사시대의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벽화(1만8500~1만4000년 전·스페인)는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군집을 이룬 들소들이 달리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말, 멧돼지 등 당시의 주식으로 사냥했던 동물들의 형상이 주제이다.

이 벽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브뢰으이의 말에 의하면 벽화는 매우 진지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기에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인간과 동물의 숨가쁜 비명과 호흡들이 뒤섞인 뜨거운 현장이었기에 생명력이 넘치듯 살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돼 있다고 했다.

또 그곳은 풍요로운 지역으로서 많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살았고, 특히 사슴이 많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 없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던 부족이었기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런데 중요한 식량이 되었던 사슴 그림은 라스코 동굴벽화(1만5000~1만3000년 전·프랑스)와는 달리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의문점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심미(審美)적 발아(發芽)를 느끼게 돼 부족들에게 말한다. 나는 저 들소를 사냥하다 맞닥뜨렸을 때, 높이 솟은 뿔과 튀어나올 듯한 눈망울이 더 크게 보인다.

또한 나를 향해서 달려들 때 그 큰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과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힘찬 근육의 몸집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내 옆에 두어 언제든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부족들은 “우리도 원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을 것이다. 동물의 뼈와 지방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불을 붙여 벽 주변을 매일 밝혀 주었고, 족장은 뿔로 장식된 가면을 쓰고, 그를 위한 염원이 담긴 주술적 음률로, 동굴 주변을 신성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소 갖고 놀던 끌로, 천장의 벽면을 긁어 내리기 시작한다. 숯과 홍토(紅土)로 좁은 동굴의 거칠고 튀어나온 벽면들을 가늠하고 채워가며, 이제 막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할 것 같은 믿음에 의지한 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염원이 시각적 표현의 형식으로도 첫발을 내디뎠던,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의 지적인 면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예술가(1)-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선사시대의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벽화(1만8500~1만4000년 전·스페인)는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군집을 이룬 들소들이 달리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말, 멧돼지 등 당시의 주식으로 사냥했던 동물들의 형상이 주제이다.

이 벽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브뢰으이의 말에 의하면 벽화는 매우 진지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기에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인간과 동물의 숨가쁜 비명과 호흡들이 뒤섞인 뜨거운 현장이었기에 생명력이 넘치듯 살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돼 있다고 했다.

또 그곳은 풍요로운 지역으로서 많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살았고, 특히 사슴이 많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 없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던 부족이었기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런데 중요한 식량이 되었던 사슴 그림은 라스코 동굴벽화(1만5000~1만3000년 전·프랑스)와는 달리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의문점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심미(審美)적 발아(發芽)를 느끼게 돼 부족들에게 말한다. 나는 저 들소를 사냥하다 맞닥뜨렸을 때, 높이 솟은 뿔과 튀어나올 듯한 눈망울이 더 크게 보인다.

또한 나를 향해서 달려들 때 그 큰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과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힘찬 근육의 몸집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내 옆에 두어 언제든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부족들은 “우리도 원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을 것이다. 동물의 뼈와 지방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불을 붙여 벽 주변을 매일 밝혀 주었고, 족장은 뿔로 장식된 가면을 쓰고, 그를 위한 염원이 담긴 주술적 음률로, 동굴 주변을 신성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소 갖고 놀던 끌로, 천장의 벽면을 긁어 내리기 시작한다. 숯과 홍토(紅土)로 좁은 동굴의 거칠고 튀어나온 벽면들을 가늠하고 채워가며, 이제 막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할 것 같은 믿음에 의지한 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염원이 시각적 표현의 형식으로도 첫발을 내디뎠던,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의 지적인 면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예술가(1)-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선사시대의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벽화(1만8500~1만4000년 전·스페인)는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군집을 이룬 들소들이 달리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말, 멧돼지 등 당시의 주식으로 사냥했던 동물들의 형상이 주제이다.

이 벽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브뢰으이의 말에 의하면 벽화는 매우 진지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기에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인간과 동물의 숨가쁜 비명과 호흡들이 뒤섞인 뜨거운 현장이었기에 생명력이 넘치듯 살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돼 있다고 했다.

또 그곳은 풍요로운 지역으로서 많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살았고, 특히 사슴이 많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 없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던 부족이었기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런데 중요한 식량이 되었던 사슴 그림은 라스코 동굴벽화(1만5000~1만3000년 전·프랑스)와는 달리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의문점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심미(審美)적 발아(發芽)를 느끼게 돼 부족들에게 말한다. 나는 저 들소를 사냥하다 맞닥뜨렸을 때, 높이 솟은 뿔과 튀어나올 듯한 눈망울이 더 크게 보인다.

또한 나를 향해서 달려들 때 그 큰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과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힘찬 근육의 몸집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내 옆에 두어 언제든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부족들은 “우리도 원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을 것이다. 동물의 뼈와 지방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불을 붙여 벽 주변을 매일 밝혀 주었고, 족장은 뿔로 장식된 가면을 쓰고, 그를 위한 염원이 담긴 주술적 음률로, 동굴 주변을 신성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소 갖고 놀던 끌로, 천장의 벽면을 긁어 내리기 시작한다. 숯과 홍토(紅土)로 좁은 동굴의 거칠고 튀어나온 벽면들을 가늠하고 채워가며, 이제 막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할 것 같은 믿음에 의지한 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염원이 시각적 표현의 형식으로도 첫발을 내디뎠던,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의 지적인 면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예술가(1)- 전영근(전혁림 미술관장)

 

선사시대의 유적인 알타미라 동굴벽화(1만8500~1만4000년 전·스페인)는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현생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군집을 이룬 들소들이 달리거나 앉아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말, 멧돼지 등 당시의 주식으로 사냥했던 동물들의 형상이 주제이다.

이 벽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던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리 브뢰으이의 말에 의하면 벽화는 매우 진지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기에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인간과 동물의 숨가쁜 비명과 호흡들이 뒤섞인 뜨거운 현장이었기에 생명력이 넘치듯 살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돼 있다고 했다.

또 그곳은 풍요로운 지역으로서 많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살았고, 특히 사슴이 많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어려움 없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던 부족이었기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여유도 있었을 거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런데 중요한 식량이 되었던 사슴 그림은 라스코 동굴벽화(1만5000~1만3000년 전·프랑스)와는 달리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많은 의문점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심미(審美)적 발아(發芽)를 느끼게 돼 부족들에게 말한다. 나는 저 들소를 사냥하다 맞닥뜨렸을 때, 높이 솟은 뿔과 튀어나올 듯한 눈망울이 더 크게 보인다.

또한 나를 향해서 달려들 때 그 큰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과 꿈틀거리며 반항하는 힘찬 근육의 몸집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그들을 내 옆에 두어 언제든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부족들은 “우리도 원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을 것이다. 동물의 뼈와 지방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불을 붙여 벽 주변을 매일 밝혀 주었고, 족장은 뿔로 장식된 가면을 쓰고, 그를 위한 염원이 담긴 주술적 음률로, 동굴 주변을 신성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소 갖고 놀던 끌로, 천장의 벽면을 긁어 내리기 시작한다. 숯과 홍토(紅土)로 좁은 동굴의 거칠고 튀어나온 벽면들을 가늠하고 채워가며, 이제 막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할 것 같은 믿음에 의지한 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염원이 시각적 표현의 형식으로도 첫발을 내디뎠던,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의 지적인 면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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