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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찾아서] 강바램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13일까지 ‘갤러리 고운’ 기획초대전
온통 죽음의 녹에 뒤덮인 한지…
죽어가는 지구환경에 경종을 울리다
녹 입힌 한지 작품, 파괴되는 산·강·들판 표현
-강바램 교수가 한지에 녹을 입혀 표현한 설치·공간미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전시회를 하면서 작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작가가 있어 도대체 무슨 전시회이기에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갤러리를 찾았다.
작가가 작품을 팔지 않겠다는 것은 재산이 많거나, 매매보다는 작품성에 승부를 걸어 배짱이 두둑하거나, 현실적 판단을 약간 혼동하는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강바램(58) 교수는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창원시 용호동 창원시청 후문 옆에 위치한 ‘갤러리 고운’에서 기획초대전을 갖고 있다.
어떤 휘황찬란한 작품을 내놨을까하는 의문으로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지껏 잘 보지 못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그렇다고 미술작품이라는 일반적 인식의 화려하거나, 치장하거나, 대중의 마음을 한눈에 휘어잡기에는 뭔가 석연찮다는 선입견이 지배했다.
이른바 설치미술·공간미술이다. 설치미술·공간미술은 일반 미술작품에 비해 감상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그 작품이 전해주는 철학과 깊이와 메시지를 파악하기 힘들어 ‘앙코는 먹지 못하고 찐빵 껍질’만 먹는 우를 범하게 된다.
강바램 교수가 가장 즐겨 쓰는 작품재료는 한지와 녹, 공기와 바람, 마지막으로 먹이다.
녹은 죽음이다. 철이 산화해 죽으면서 녹을 발생시킨다. 이 녹은 또 다른 녹을 낳고, 또 다른 철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런데 전시장 벽면에는 온통 녹을 입은 한지가 자연공기에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고 있다. 녹이라는 죽음을 입은 한지작품은 그래서 전시장 벽면에서 죽어가고 있다.
강 교수는 녹을 부드러운 옐로우 톤으로 뽑아내 흡사 아름다운 염색공예 작품으로 혼동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작품에 녹을 입혀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임종을 맞는 작품들은 자연바람, 에어컨 바람에 하늘거리며 몸부림친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데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하고 있다.
전시장에 누워 있는 한지 설치작품은 시체를 연상시킨다. 아니 시체일 수도 있고 병들어 파괴돼 가는 산이며, 강이며, 들판일 수도 있다.
전시장에 누워 있는 시체가 어떠한 장치에 의해 움직이니 흡사 좀비(살아있는 시체)가 거리로 뛰쳐나온 것 같은 전율이 엄습한다. 그런데 그 좀비는 더 이상 일어서질 않는다. 다만 누워서 살려달라고 부들부들 몸부림만 친다.
죽어가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에게 “살려달라, 너희도 언젠간 여기 누울 것이다. 아직 죽기에는(파괴되기에는) 너무 억울해”라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품들이 왜 부들부들 떠는지도 간파된다. 아니 살아나기 위해 일어서려 하고, 숨 쉬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듯하다.
강 교수 작품의 관전평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죽어감과 살아있음의 교차. 삶과 죽음이 떨어져 있지 않고 한곳에서 교차하면서 산 것은 죽은 것이고, 죽은 것은 또 다른 삶의 이입과정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그 삶과 죽음의 쌍곡선 최고 윗부분에 ‘환경 파괴의 위기의식’이 대중에 전달되면서 강 교수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장식된다.
강 교수는 젊어서부터 특히 ‘녹’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녹은 철로부터 태어나 철을 죽여야 계속 살아난다. 그 녹의 유와 무, 무와 유의 순환과정을 작품에 담아왔다. 그 철의 죽음과 녹의 탄생을 작품에 나타내면서 종국적으로 죽음에서 삶이 태어나고, 삶에서 죽음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순환법칙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화가인 그 자신이 지극히 동양사상에 충실하면서도, 재료는 동서양과 혼합해 서양적 냄새도 풍기지만 내재된 표현은 동양적 사상에 충실하고 있다.
어쩌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동양적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환경파괴와 인간성 실종이라는 위기의식을 간파한 때문인지 강 교수는 환경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면서 환경미술에 심취해 왔다.
강 교수 자신은 이러한 환경문제, 전통으로의 회귀, 전통의 연구와 현대적 재해석에 앞장서면서 12명을 규합해 ‘바램연구소’라는 전통회화 연구소를 만들어 고구려·고려·조선의 불교회화와 서민들이 즐겨 그려온 회화를 연구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강숙자’라는 정감있는 이름을 포기하고, ‘강바램’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도 강 교수의 집착 아닌 집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램은 ‘바래다’의 명사형 단어로 빛이 바래다, 색이 바래다 등 새로운 것이 낡은 것, 손때가 묻은 것, 경륜이 쌓인 것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담는 단어이다. ~을 바라다(want, need, hope)의 뜻(이때는 ‘바람’이다)은 절대 아니라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앞으로 미술인들도 환경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데 나서야 하고 환경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것도 미술인들이 해야 할 소임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강바램 교수 ☏ 010-8517-7287.
경남신문 /글·사진=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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