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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피아노만 치고 앉아 있다고 실력이 느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몸소 느낀 한국 음악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피아니스트 이주은(30). 그녀는 마산에서 태어나 용마초등학교, 합포중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예고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산호동에서 ‘피아노 제일 잘 치는 아이’였던 그녀. 역시 서울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학우들은 다들 예원학교를 졸업한 재원들이었고 피아노를 다루는 솜씨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꼈다. 자격지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고, 방황이 찾아왔다. 피아노 치는 것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3학년이 되자 후회가 몰려왔다. 그때부터 밤낮없이 피아노에만 매달렸고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이듬해 연세대 음대에 합격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금호영재오디션을 통해 금호아트홀, 영산아트홀 같은 큰 무대에 서며 서서히 피아노에 눈을 떠 갔다.
2학년 재학 중 학교를 방문한 외국 음대생들의 피아노연주를 듣고 ‘내 연주와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당장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작정 캐리어 하나만 끌고 뮌헨에 도착해 유스호스텔을 전전했다. 마른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어렵게 독일어를 배워갔다. 힘들고 외로워서 많이 울었다. 뮌헨국립음대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음대에서 정신없이 공부했다. 이탈리아의 카사그란데, 칼라브리아, 독일의 아마데오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 나가 입상했다.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러, 올해 3월 최고연주자과정 심사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졸업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뮌헨음대 미하엘 쉐퍼(Michael Schafer)교수다. 그는 갓 독일에 온 주은씨에게 틈만 나면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에 가라고 권했다. 그의 교육철학은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될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는 것. 그때 그녀는 피아노는 음악이라는 무궁한 분야의 한 부분일 뿐이며, 음악 또한 예술이라는 방대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 그녀는 악보를 보는 것이 단순히 음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작곡자가 들려주고픈 생각과 사상의 기록을 들추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지난해에는 통영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4위에 입상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창원교향악단과 지난달 14일 협연을 가지기도 했다.
올겨울까지는 뮌헨에 머물며 12월 본에서 열리는 베토벤 콩쿠르를 준비할 계획이라는 그녀. 경남의 음악도들에게 해주고픈 말도 많다.
“전 동네에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쇼팽, 베토벤, 모차르트 이외엔 피아노곡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청음이론도 몰랐어요. 뒤늦게, 천천히 저는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알았아요. 앉아서 피아노만 치지 마세요. 책도 많이 읽고, 많은 경험을 통해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읽어보세요. 아마 늘 똑같았던 연주가 ‘뭔가’ 달라질 겁니다.”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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