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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천장벽화를 그릴 때 한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보게 미켈란젤로, 누가 알아준다고 그 구석진 곳까지 그렇게 목이 빠지도록 열심히 그리는가?” 하고 묻자 미켈란젤로가 답하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리는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그렇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구석진 곳 작은 인물들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4년 반 만에 완성된 천장벽화가 바로 ‘천지창조’이며, 그 이후 6년 만에 완성된 프레스코화가 ‘최후의 심판’이다.
외과의사 질송바테토와 마르셀로지올리베이라가 쓴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작업에 몰두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다리가 부어 장화를 찢고 무리하게 발을 뺄 때는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고통마저도 참아야 했다. 그는 오직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초인적인 열정으로 스스로 고독에 머물러 예술 이외에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슬픔 그 자체로 살아, 우리들에게 오늘날까지 영혼불멸의 위대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화가 볼테르가 분필로 그린 말년의 미켈란젤로 초상화를 보면 우리 마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너무나 측은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납작 붙은 곱슬머리에 부러진 코, 굳게 다문 입술하며, 슬픔과 고독에 잠긴 눈망울과 병치레를 하는 듯한 우수 깊은 표정은 분필그림이지만 살아있는 듯 다가온다. 말년에는 병상에서 일어나 작업을 위해 비를 맞으며 성베드로 성당으로 달려나가 하인의 등에 업혀오기를 여러 차례, 그런 가운데서도 90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건함과 성스러운 믿음, 즉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벽화그림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시기엔, 그에게 가정적인 문제, 경제적인 궁핍, 건강문제 등 미켈란젤로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절망감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그뿐인가. 예나 지금이나 질투하는 예술가들의 이간질로 그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를 그리도록 추천받게 된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한번도 프레스코벽화를 그려 본 적이 없기에 결국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고, 이 작업으로 위대한 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라는 정치예술적 음모에서 비롯되었기에 미켈란젤로는 한사코 라파엘로를 추천하면서 자신은 빠져나오려고 했다.
미켈란젤로는 이 시기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의기소침한 시련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결단하고 프레스코화를 처음부터 새로 배워 드디어 1508년 5월 10일 이 역사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뿐만 아니라 대리석 돌덩어리에서 탄생한 ‘피에타’는 완벽한 작품 속에 예술의 모든 가치와 힘이 녹아있기 때문에 “자연이 육신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의사가 자신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간파한 경우로 볼 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자신의 폭넓은 지식과 결합한 해부학의 열린 교과서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그리고 조각작품 ‘피에타’ 등의 대작 속에 감추어진 놀라운 인체의 비밀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창조주의 형상을 닮아 지은 것이 바로 인간이고, 인간은 바로 소우주로서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천지창조’ 복원 시 “인간의 몸으로 이루어진 신학의 거룩한 성소”라고 찬양한 말에 경외스러움마저 느낀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벽화에서 오른손에 외과 수술용 칼을 들고 있는 성바르톨로메오가 왼손에 들고 있는 사람가죽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에 그저 두렵고 놀라울 뿐이다. 그가 자신의 껍질을 그려 넣음으로써 최후의 심판을 온몸으로 완성하고 사인을 남긴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향도 아닌 이곳 유등마을에 대산미술관이 터 잡은 지 13년, 지난 13년 동안 71회의 무료 기획초대전과 173만 건에 이르는 홈페이지 접속과 유등마을 벽화작업으로 농촌마을에 예술의 물꼬를 트다 보니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법이 없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좌절과 슬픔, 시련의 고통 뒤엔 고진감래가 있고, 먹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지 않은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천장벽화를 13년 동안 그려나간 미켈란젤로가 친구에게 대답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알고 있잖은가”라는 말을 상기하며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으로 족하리라 생각하고 난 오늘도 찌든 삶에 힘겨운 이들에게 나를 돌아보고 삶의 여유를 찾는 농촌미술관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래서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외고집 천재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등에 남긴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 경건함 속에 숭고한 삶의 나날이 되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감명받은 한권의 책]
김철수 창원 대산미술관장-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질송바테토 외 지음)
걸작의 배경엔 시련과 신념이 있더라 |
예술 열정으로 완성된 대작 속 비밀 |
외과의사가 해부학적 관점으로 밝혀 |
김철수 창원 대산미술관장이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으며 활짝 웃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천장벽화를 그릴 때 한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보게 미켈란젤로, 누가 알아준다고 그 구석진 곳까지 그렇게 목이 빠지도록 열심히 그리는가?” 하고 묻자 미켈란젤로가 답하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리는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그렇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구석진 곳 작은 인물들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4년 반 만에 완성된 천장벽화가 바로 ‘천지창조’이며, 그 이후 6년 만에 완성된 프레스코화가 ‘최후의 심판’이다.
외과의사 질송바테토와 마르셀로지올리베이라가 쓴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작업에 몰두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다리가 부어 장화를 찢고 무리하게 발을 뺄 때는 살점이 떨어져 나오는 고통마저도 참아야 했다. 그는 오직 예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초인적인 열정으로 스스로 고독에 머물러 예술 이외에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슬픔 그 자체로 살아, 우리들에게 오늘날까지 영혼불멸의 위대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화가 볼테르가 분필로 그린 말년의 미켈란젤로 초상화를 보면 우리 마을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너무나 측은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납작 붙은 곱슬머리에 부러진 코, 굳게 다문 입술하며, 슬픔과 고독에 잠긴 눈망울과 병치레를 하는 듯한 우수 깊은 표정은 분필그림이지만 살아있는 듯 다가온다. 말년에는 병상에서 일어나 작업을 위해 비를 맞으며 성베드로 성당으로 달려나가 하인의 등에 업혀오기를 여러 차례, 그런 가운데서도 90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경건함과 성스러운 믿음, 즉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벽화그림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시기엔, 그에게 가정적인 문제, 경제적인 궁핍, 건강문제 등 미켈란젤로는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절망감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그뿐인가. 예나 지금이나 질투하는 예술가들의 이간질로 그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를 그리도록 추천받게 된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한번도 프레스코벽화를 그려 본 적이 없기에 결국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이고, 이 작업으로 위대한 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라는 정치예술적 음모에서 비롯되었기에 미켈란젤로는 한사코 라파엘로를 추천하면서 자신은 빠져나오려고 했다.
미켈란젤로는 이 시기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1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의기소침한 시련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결단하고 프레스코화를 처음부터 새로 배워 드디어 1508년 5월 10일 이 역사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뿐만 아니라 대리석 돌덩어리에서 탄생한 ‘피에타’는 완벽한 작품 속에 예술의 모든 가치와 힘이 녹아있기 때문에 “자연이 육신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의사가 자신의 시선으로 예술작품을 간파한 경우로 볼 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자신의 폭넓은 지식과 결합한 해부학의 열린 교과서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그리고 조각작품 ‘피에타’ 등의 대작 속에 감추어진 놀라운 인체의 비밀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창조주의 형상을 닮아 지은 것이 바로 인간이고, 인간은 바로 소우주로서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천지창조’ 복원 시 “인간의 몸으로 이루어진 신학의 거룩한 성소”라고 찬양한 말에 경외스러움마저 느낀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벽화에서 오른손에 외과 수술용 칼을 들고 있는 성바르톨로메오가 왼손에 들고 있는 사람가죽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에 그저 두렵고 놀라울 뿐이다. 그가 자신의 껍질을 그려 넣음으로써 최후의 심판을 온몸으로 완성하고 사인을 남긴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향도 아닌 이곳 유등마을에 대산미술관이 터 잡은 지 13년, 지난 13년 동안 71회의 무료 기획초대전과 173만 건에 이르는 홈페이지 접속과 유등마을 벽화작업으로 농촌마을에 예술의 물꼬를 트다 보니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법이 없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좌절과 슬픔, 시련의 고통 뒤엔 고진감래가 있고, 먹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지 않은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천장벽화를 13년 동안 그려나간 미켈란젤로가 친구에게 대답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알고 있잖은가”라는 말을 상기하며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으로 족하리라 생각하고 난 오늘도 찌든 삶에 힘겨운 이들에게 나를 돌아보고 삶의 여유를 찾는 농촌미술관을 만들어 가고 싶다. 그래서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외고집 천재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등에 남긴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 경건함 속에 숭고한 삶의 나날이 되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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