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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네 컷 만화에 서민애환 담아왔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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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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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66
내용

 

경남신문 시사만화 ‘거북이’가 8일 국내 단일신문 시사만화 가운데 최장 기록인 9000회를 맞았다.

거북이가 지금까지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5공 정권 때 연재 중단의 탄압에도 꺼지지 않았던 김선학(62) 본지 편집위원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편집위원이 언론계에 몸담기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그는 “당시 미술선생님이 호남매일신문에 소설 삽화를 그리고 있던 중 갑자기 전근을 떠나게 돼 삽화 80회분을 맡기고 가셨다. 신문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 맛을 알았고 신문사에 발을 딛게 됐다”고 기억했다.

이후 1977년 경남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흐름을 해학과 풍자로 통쾌하게 그린 ‘거북이’를 통해 34년 동안 서민들의 애환과 고뇌를 함께하고자 노력했다.

경남신문에 연재한 첫 시사만화 제목은 ‘사파리’였지만, 시대 변천에 따라 ‘거북이’로 제목을 바꿨다. 사파리는 1977년 7월 27일부터 1982년 7월 2일까지 연재됐고, 거북이는 1987년 6월 1일부터 현재까지 연재 중이다. 거북이라 이름 지은 것은 세파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김 편집위원의 의지가 담겨 있다.

김 편집위원은 “거북이는 무서운 태풍이 몰아칠 때는 목을 움츠려 있다, 다시 평온을 찾게 되면 목을 내놓는다. 속절없이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북이라는 제목을 짓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거북이는 바람 잘 날 없던 사회의 명암을 찾아내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묘미를 줄곧 보여 왔다.

그러나 거북이는 군사정권 시절 탄압에 따른 역경도 많았다.

그는 “전두환 정권 당시인 1982년 ‘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을 5공 정권과 연계해 만화를 그려 보안대에 끌려가 뺨을 맞았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거북이 연재가 중단돼, “잡혀간 것 아니냐, 다시 만화를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라는 독자들의 격려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김 편집위원은 “시사만화라는 것은 신문의 미감(미적 감각)을 주고 신문의 양념적, 조미료적인 역할을 하지만 무엇보다 평론적인 역할을 많이 가지고 있다. 손재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성, 속도성, 유머성, 공감성 등 4가지의 패턴이 맞아야 하나의 시사만화가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김 편집위원은 군부독재 시절보다 오늘날 시사만화의 현실을 더 안타깝게 여긴다. “보안대로부터 뺨 맞은 것보다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 가슴 아픈 일이 더 많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내 주요 일간지의 시사만화와 만평이 이런저런 이유로 없어졌다. 시사만화계에서는 소위 현 정권에 잘 보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어 경남신문 독자에게 “어떤 때는 (거북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독자들이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북이는 어느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편향될 수도 없고, 편향되고 싶지도 않다. 항상 중간적인 입장에서 오늘도 거북이를 그리겠다”고 말했다.

김호철기자 keeper@knnews.co.kr


※ 경남신문은 8일 오후 5시30분 경남신문 2층 식당에서 김 편집위원의 시사만화 ‘거북이’ 9000회 축하연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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