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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에게는 생계의 터전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추억의 거리. 지난 주말 오랜만에 창동을 찾았다. 창동 예술촌 조성공사가 한창일 때 둘러보고 텅 빈 가게들과 골목을 어떻게 예술과 문화로 꾸밀 것인지 자못 궁금했다.
완성된 창동 예술촌 골목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울퉁불퉁하던 바닥은 곳곳에 멋스런 문양을 넣어 단장했고,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이 지역 출신 예술인들을 소개하는 패널과 우중충한 골목에 벽화를 그려넣어 골목 분위기를 밝게 한 점이다. 마치 우범지역 같았던 골목길은 그렇게 단장돼 있었다.
예술촌은 현재 갤러리, 도자기 체험장, 공예품 판매점, 예술촌아트센터, 퀼트 공방, 유리공방 등 50개 점포가 입주해 있으며 마산예술흔적, 문신예술, 에꼴 드 창동 등 3가지 테마별로 조성돼 있다. 예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추억의 고모령도 있고, 골목 안쪽에 있는 커피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휴일인데도 문을 연 가게 몇 군데에 들어가 얘기를 나눴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차를 권하는 주인도 있고,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보겠느냐고 권하는 주인도 있었다. 낮시간에 가족 방문객이 만들었을 것 같은 작품도 몇 점 보였다. 아마 젊은 시절 마산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창원으로 이사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창동 예술촌 조성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1980년대 이 거리는 참 대단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창동거리 인파는 창원의 상남동을 능가했다. 상남동은 지역이 넓은 반면 창동과 오동동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차이도 있지만, 창동에서 장사를 한다고 하면 안 되는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어느 해인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창동거리를 나갔다. 인파에 둥둥 떠밀려 다녔고, 당시 유행하던 카페에 겨우 자리를 잡고 웃돈을 준 차 한 잔 마시고 얘기를 나누면 자리를 비켜달라는 종업원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창동이다.
수년 전 중국 베이징의 798예술문화지구와 독일의 에센지역을 여행했던 적이 있다. 이들 도시와 창동 예술촌이 비슷한 것은 모두 쇠락해 가는 도심을 문화와 예술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이제는 베이징 관광 필수 코스가 된 798예술문화지구는 냉전시대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공장지대에 많은 예술가들과 화랑, 갤러리, 카페, 아트숍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정부에 의해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되면서부터 베이징의 문화 아이콘으로 상징되고 있다.
독일의 에센도 마찬가지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폐광 이후 10여 년간 죽은 땅으로 방치된 에센 졸페라인 광산을 전 세계 디자인의 본거지인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부활시켰다. 이어 주정부와 에센시는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 박물관, 극장, 디자인스쿨 등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졸페라인 방문객은 연간 200만 명에 이르고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스페인의 북부 공업도시인 빌바오도 비슷하다. 철광산으로 인해 발전한 공업도시였지만 철강 산업의 쇠퇴로 도시가 쇠락했다. 그러나 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이 여기에 건립되면서 관광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문화는 이런 것이다. 얼어붙은 땅에 생기를 돋게 하는 힘이다. 인적 끊긴 골목길을 그대로 두면 음산한 골목길에 그치지만 여기에 그림이 있고, 음악이 흐르게 하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문화와 예술의 공간이 된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예술과 문화가 없는 세계적인 명품도시는 없다. 창동을 살리는 새로운 계획이 시작됐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자체의 꾸준한 관심과 예술인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접목하는 일이다. 창동 예술촌이 창동거리를, 옛 마산을 살리는 명품 문화의 거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대(문화체육부장)
경남신분 201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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