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커튼을 원형으로 두른 후 붉게 칠한 마론인형을 낚싯줄에 매단 감라영 작가의 설치작품.
붉은 블라인드와 벽에 나비의 형상을 그린 설치작품. 꿈속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기억을 나비가 나는 동선으로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창원 성산아트홀 로비에 전시된 붉은색의 거대한 붓. 곧추선 붓대와 유연하게 구부러져 있는 붓촉이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부터 엿새 동안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문자문명전을 보러 간 길이었습니다. 전시관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붓 한 자루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붉은색에 반짝이는 우레탄, 꼿꼿하게 곧추세워진 붓대와 유연하게 구부러져 있는 붓촉을 마치 신기한 생물을 보듯 살펴보다 문득 뇌리에 스치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바로 경남 최초의 설치미술가로 알려진 감라영 작가입니다.
“사실은 저 붉은색 별로 안 좋아해요. 옷도 화장도 파스텔 톤을 선호하는데, 유독 작품을 할 땐 붉은색을 고집하게 돼요. 무의식중에 붉은색을 취하고 있어요. 왜 레드를 택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내면에 내재된 저의 색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포기가 안 될 것 같아요.” 호탕한 성격 탓에 아직 30대임에도 지역 미술계에서 ‘그릇이 크다’는 말을 듣는 감 작가. 하지만 타인에 의해 평가되는 페르소나가 아닌, 스스로가 규정한 그녀를 만나러 ‘DRAWING BEYOND’展이 열리고 있는 창원 중앙동 갤러리 필을 찾아갔습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께서 미안함을 벌충하시려고 마론인형을 많이 사주셨어요. 실제로 마론인형은 비밀을 나누는 친구였지요. 중학교 때까지도 마론인형을 사 모았는데, 모두 합해 보니 80개가 넘었어요. 그땐 외로움인 줄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건 어린아이가 감내하긴 힘든 고독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마론인형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붉은 실커튼을 원형으로 두른 후, 그 가운데 붉은 칠과 우레탄 도장 처리를 한 마론인형을 낚싯줄에 매단 설치작품에 그녀가 중학교 때까지 사 모은 인형이 쓰였기 때문인데요. 쏟아지는 듯 흘러내리는 실커튼에 대롱대롱 매달린 인형이 주는 시각적 불편함이 강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었습니다. “마론인형은 누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늘 그 상태잖아요. 실커튼은 인형을 지켜주는 안전망 같지만 동시에 인형을 외부와 차단시키기는 벽이기도 하고요. 그것이 제가 느낀 저의 유년시절이었습니다.”
그녀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는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더불어 ‘드로잉’ 행위가 돋보입니다. 빛을 바래게 한 뒤 겹겹이 덧칠한 광목천 위에 재봉틀로 자유롭게 자수를 놓은 작품, 붉은 블라인드와 벽에 나비의 형상을 그린 설치작품이 그것인데요. 꿈속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기억을 나비가 나는 동선으로 구체화시킨 이 작품들은 ‘단순한 회화표현인 드로잉을 확장시킨 개념’이라고 감 작가는 말합니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의 타이틀도 직접 만든 조어(造語)인 ‘DRAWING BEYOND’로 정했습니다. 현실을 넘어선, 관념적인 세계를 선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붓의 정체에 대해 물었는데요. “김영호 작가와 함께 제작했어요. 레드는 에너지와 파워를 가진 색입니다. 그리고 무력이 아닌 문자가 문명을 이룩했듯 붓은 강력한 힘을 가진 사물이고요. 그래서 이 두 가지를 결합시켰어요. 석고를 떠서 FRP로 작업했고, 우레탄 도장으로 광택을 주었고요. 설치작업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회화나 조각 등에 비해 보존력도 떨어지고, 무척이나 오래 걸리고요. 하지만 창조의 과정과 완결에서 느끼는 희열, 그것이 저를 살아가게 하지요.” 전시는 28일까지.
글= 김유경 기자·사진= 김승권기자
경남신문 원본기사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45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