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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 생활체험 수기 수상작] 대상 내 인생의 소나기가 그치면 무지개는 뜨려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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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530
내용
[다문화가족 생활체험 수기 수상작] 대상
내 인생의 소나기가 그치면 무지개는 뜨려나? -황정실 (중국·하동군 금남면)

황정실 씨와 두 아들.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는 예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내 인생에 쏟아진 소나기는 내 모두를 적셨다.

“엄마, 내가 사춘기인가 봐요”

“그런가? 내 아들!”

큰아들 보석이가 사춘기인 나이만큼 세월이 흘렀다. 내가 여기 온 지 14년이 지났다. 눈물이 난다.

1999년 내 나이 스물여섯,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이였다. 어머니의 고향 대한민국,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대한민국에 대한 환상과 꿈.

나는 이곳으로 오고 싶었다. 이 나라의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남편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위해 2000년 한국으로 왔다. 한국행 비행기 속에서 나는 화려한 내 인생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으로 왔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첫발을 디딘 한국의 공항은 정말 멋졌다. 이제 나도 이 나라 사람으로 살겠구나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남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반가움과 안도감으로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얼마나 잠깐 동안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이 가여워 견디기가 힘들다.

시골집에 도착하고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식도, 드레스도, 신혼여행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같이 살았다. 그것이 나의 결혼생활이었다. 물릴 수도 없는 결혼생활이었다. 다른 것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한복 한 벌 예쁘게 입고 싶은 마음까지 무시당했을 때는 정말 슬펐다.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 친구들이 지금 나를 보면 무엇이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외로움과 서러움 속에서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도 말도 너무나 다른 곳에서 시집온 결혼이민자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너는 나아, 저 친구들에 비하면 생김새도 비슷하고 말도 훨씬 빨리 배울 수 있고….’

그 어려움 속에서 나의 큰아들이 태어났다. 2000년 11월 28일이 보석 같은 내 아들 보석이의 생일이다. 아이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무뚝뚝한 남편과 잔소리 심한 시어머니. 농사일을 마치고 화가 나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눈치만 보아야 하는 날이 많았다. 남편이 내게 유일하게 하는 말이란 중국에 전화 조금만 하라고, 전화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나는 그림자처럼 있었다. 나의 존재는 없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게 나의 잘못인가? 나는 죄도 없는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남편과 나는 각자 살고 있었다. 방도 따로 쓰고 밥도 따로 먹고 함께 하는 일이 드물었다. 더구나 빚이 많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빚 독촉 전화가 걸려 왔다. 심지어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경우도 많았다.

동네에서 남편은 여전히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 한 번도 좋은 사람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없어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고, 그 미안함을 감추느라 냉정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이 살아 있다면 농담 삼아서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왜 그렇게 내게 냉정하셨어요?’

‘혼자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차라리 제게라도 나 정말 힘들다고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가고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지만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 찾으면 언제나 내게 제일 그리운 사람으로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미어져 올 때도 따뜻한 말 한마디 없었던 남편이 지금은 그립다.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나 보다.

남편의 무관심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이는 자라고 빚은 점점 늘어만 갔다. 애쓰는 남편의 노력도 피나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의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엔 친정어머니가 주신 패물까지 팔았다.

한 해 농사를 지어 빚을 갚지 못하면, 땅을 팔아서 갚아야 했고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서 또 농협에 빚을 내어 농사를 지었다. 한겨울에는 보일러 기름이 없어서 옆집에 도움을 청한 것이 몇 번인지 셀 수가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아버지가 계시는 서울로 갔다. 버스를 타고 내 품에 있는 보석이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 이것이 네가 꿈꾸던 결혼생활이냐?”

아픈 마음으로 원망스런 타박을 하시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중국으로 돌아가자며 내 손을 잡으시는 아버지. 아직도 그때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남편이 있는 하동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무능하고 무심한 남편이지만 보석이의 아버지인 남편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아버지와 며칠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답도 없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순간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남편의 형제들이 하는 말을 듣고 차라리 죽고 싶었다. 빚을 지게 된 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이 나라가 싫었다. 다시 태어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다. 모든 꿈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정신 잃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둘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모든 게 자신이 못나서 일어난 일이라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의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고 했다. 그 후 나는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파프리카 유리온실에서 일을 하고, 고추농사도 짓고 이것저것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나 생활도 남편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는 것은 고달프고 남편은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마음을 나눌 가까운 사람 하나 없던 나는 보석이가 걱정스러웠다. 형제라도 가까이 있으면 덜 외로울 거라 생각하고 둘째를 가졌다. 임신 후에도 유리온실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변한 것 없는 살림살이 때문에 아이를 돌볼 힘이 없어 중국에 있는 친정어머니에게 둘째 보균이를 보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식당일을 했다. 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의 술은 점점 더 늘었고 몸은 야위어만 갔다.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해 병원에 가니 ‘간암’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의 뜻을 그때 알았다. 아무도 내게 없었다. 나만 믿고 나만 바라보고 있을 아들 둘만 있었다. 계속되는 입원과 퇴원, 그 와중에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갈 수가 없었다. 죽음을 앞에 둔 남편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었다.

남편이 떠났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 남은 1억 원의 빚, 갚을 엄두가 나지 않아 상속포기를 해야 했다. 집도 땅도 모두 넘어갔다. 길바닥에 나앉게 된 우리를 가엾게 여긴 먼 친척이 그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준 복지사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신다. 지금은 기초수급자가 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기꺼이 이 땅의 사람으로 이 땅에 산다. 내 아이들을 키워 이 나라의 군인을 만들어야 하고, 이 나라의 좋은 국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위기를 넘긴다.

“엄마, 이제 비가 그친 것 같아요. 가요!”

“그래, 가자꾸나.”

아이들 둘을 데리고 문을 나선다. 모처럼 쉬는 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하루를 즐기기로 했다. 소나기가 그치면 맑은 하늘이 나타나듯,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오르듯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은 아름다울 것이라 믿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원문 :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4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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