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보
내용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 전경.
파독 간호사 출신 류길자(오른쪽)씨가 남해 독일마을 파독전시관에서 안내를 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의 마지막 대사는 영화 내내 울었던 관객의 눈물샘을 한 번 더 자극한다.
영화가 13일 현재 1000만 관객을 바라볼 정도로 소위 대박을 치면서 영화 속 ‘덕수’이자 ‘영자’였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 귀국 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13일 남해군에 따르면, 겨울철 관광비수기임에도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을 찾는 관광객들은 급격히 늘어 지난 12월 1주차부터 3주차까지 파독전시관 1주일 평균관람객이 1500여명이었던 것이 영화가 개봉한 12월 17일 이후 12월 4주차 4500여명, 1월 1주차 7000여명, 2주차 4300여명이 다녀갔다.
◆독일문화가 살아있는 독일마을= 남해군 삼동면 물건방조어부림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독일마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1960년대 고국을 떠나 외화벌이에 나섰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정착 후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남해군은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지난 2000년부터 수차례 독일 베를린 등에서 현지설명회를 하고 입주민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하고 공공시설을 조성했다.
그림 같은 절경을 자랑하는 물건항을 앞에 두고, 주황색 기와와 하얀색 벽의 독일식 주택이 한두 채 세워져 마을이 되고, 아름다운 정원들이 생기자 관광객들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이제는 남해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현재 파독광부, 간호사 출신 17가구, 30여명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 이들은 독일식 건축양식과 문화가 가득한 주택에 살면서 민박업 등을 하면서 관광객과 독일문화를 공유하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끼리 이역만리 떨어진 독일에서의 삶을 추억하며 지낸다.
◆파독광부·간호사들의 삶의 흔적, 파독전시관= 독일마을 주민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유명해지자 파독광부와 간호사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지난해 6월 독일마을에 파독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파독전시관은 도이처플라처라 불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 독일전통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이 배치돼 있고 지하에는 파독 근로자들의 유물과 역사기록물이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관은 현대사를 사진과 글로 장식한 타임터널부터 글뤽아우프(독일어·‘무사히 지상에서 보자’는 뜻)를 외치며 막장에 들어서는 파독광부들을 형상화한 공간인 갱도,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를 테마로 한 전시 공간, 독일에서의 삶을 재현한 공간과 영상체험코너 등으로 구성돼 있다.
파독전시관에는 파독광부 2명과 간호사 4명이 해설사 역할을 하고 있다.
파독간호사 출신 해설사 류길자 (70)씨는 “1966년에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독일로 갔다. 부모형제 생각에 밤마다 눈물을 훔치고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하면서 당시 환자였던 독일인 남편도 만나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며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알아주시니 고맙고, 그 시절 생각이 참 많이 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윤관 기자
남해군 삼동면 독일마을 전경.
파독 간호사 출신 류길자(오른쪽)씨가 남해 독일마을 파독전시관에서 안내를 하고 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온 가족이 모였지만 홀로 쓸쓸히 자기 방에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6·25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의 마지막 대사는 영화 내내 울었던 관객의 눈물샘을 한 번 더 자극한다.
영화가 13일 현재 1000만 관객을 바라볼 정도로 소위 대박을 치면서 영화 속 ‘덕수’이자 ‘영자’였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 귀국 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13일 남해군에 따르면, 겨울철 관광비수기임에도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을 찾는 관광객들은 급격히 늘어 지난 12월 1주차부터 3주차까지 파독전시관 1주일 평균관람객이 1500여명이었던 것이 영화가 개봉한 12월 17일 이후 12월 4주차 4500여명, 1월 1주차 7000여명, 2주차 4300여명이 다녀갔다.
◆독일문화가 살아있는 독일마을= 남해군 삼동면 물건방조어부림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독일마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1960년대 고국을 떠나 외화벌이에 나섰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정착 후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남해군은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지난 2000년부터 수차례 독일 베를린 등에서 현지설명회를 하고 입주민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하고 공공시설을 조성했다.
그림 같은 절경을 자랑하는 물건항을 앞에 두고, 주황색 기와와 하얀색 벽의 독일식 주택이 한두 채 세워져 마을이 되고, 아름다운 정원들이 생기자 관광객들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이제는 남해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현재 파독광부, 간호사 출신 17가구, 30여명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 이들은 독일식 건축양식과 문화가 가득한 주택에 살면서 민박업 등을 하면서 관광객과 독일문화를 공유하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끼리 이역만리 떨어진 독일에서의 삶을 추억하며 지낸다.
◆파독광부·간호사들의 삶의 흔적, 파독전시관= 독일마을 주민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유명해지자 파독광부와 간호사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지난해 6월 독일마을에 파독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파독전시관은 도이처플라처라 불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 독일전통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이 배치돼 있고 지하에는 파독 근로자들의 유물과 역사기록물이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관은 현대사를 사진과 글로 장식한 타임터널부터 글뤽아우프(독일어·‘무사히 지상에서 보자’는 뜻)를 외치며 막장에 들어서는 파독광부들을 형상화한 공간인 갱도,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를 테마로 한 전시 공간, 독일에서의 삶을 재현한 공간과 영상체험코너 등으로 구성돼 있다.
파독전시관에는 파독광부 2명과 간호사 4명이 해설사 역할을 하고 있다.
파독간호사 출신 해설사 류길자 (70)씨는 “1966년에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독일로 갔다. 부모형제 생각에 밤마다 눈물을 훔치고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하면서 당시 환자였던 독일인 남편도 만나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며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알아주시니 고맙고, 그 시절 생각이 참 많이 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윤관 기자
0
0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