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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남의 미술은 대단한 경사를 맞이한 해다. 100년 전인 1915년, 1월에 서양화의 전혁림이 태어나고 며칠 늦게 한국화의 풍곡 성재휴가, 6월에는 조각의 우성 김종영이 태어났다. 올해 이 세 작가가 나란히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세 명을 합쳐 탄생 300년이라 생각하고 싶다. 한 해에 태어나 서양화 한국화 조각의 각각 다른 장르에서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경남의 대표작가이자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태어난 작가인 전혁림은 예향 통영 출신이다. 강렬한 색채와 비정형의 추상회화 작품을 끌어내온 그는 색의 배합과 균형이 뛰어나 한국적인 추상작가로 평가받으면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젊은 시절을 경남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한국화단의 화풍과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특한 추상화풍을 승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후 전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혔으나 노년에는 다시 통영으로 귀향해 작품에 전념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풍곡 성재휴는 전혁림보다 며칠 늦게 창녕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구에서 사군자의 전통수묵화를 시작으로 전통산수를 배우기 위해 전라도의 허백련을 찾아가 3년간 전통산수화를 공부했다. 그러나 이후 돌연 전통의 기법을 깨고 본인만의 독자적 화풍을 개발하기 위해 허백련에게서 배운 기법마저도 탈피를 시도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굵고 힘 있는 선과 강한 색채의 조화를 끌어내게 된다. 산수화뿐만 아니라 호랑이, 부엉이, 물고기, 게 등 다양한 소재를 특유의 강한 필법을 구사하며 표현한 작품들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상과 개인전을 통해 인정받고, 이응노의 필법의 영향으로 현대적 필법은 더 성숙해지게 됐다. 그가 가지는 독창성은 전통만 고집하던 당시 한국 수묵화의 기법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대단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 평가된다.
6월, 우성 김종영이 창원 소답동의 꽤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생가는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한국 전통가옥의 건축양식이 아름답다. 동요 ‘고향의 봄’에서 나오는 ‘꽃 대궐’의 의미를 품고 있는 곳이다.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해 공부를 하고 도쿄미술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조각가이면서도 ‘불각(不刻)의 美’라는 예술 철학으로 비정형의 주옥같은 조각 작품들을 만들어 낸 한국미술의 거장이지만, 그는 조각뿐만 아니라 드로잉, 서예, 문학 등 다양한 예술장르를 섭렵하고 융화의 표현방식이 잘 나타나는 작가다.
이렇듯 세 작가는 같은 해에 경남에서 태어나 각각의 예술세계를 독창적인 기법과 화풍으로 한국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다. 동시대 한국미술계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작가들이다. 그렇지만 미술 사료를 꼼꼼히 보자면 안타까운 점이 보인다. 이들의 상호 교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같이 전시를 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연이야 더 연구를 해봐야 알겠지만 제각기 다른 장르였기 때문이었으려니 하는 억지스런 단정을 지어본다. 이 억지스런 단정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통영시와 전혁림미술관에서는 전혁림 탄생 100주년 기념을 위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김종영 역시 서울대학교와 김종영미술관을 시작으로 창원에서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고 기념사업이 준비 중이다. 아쉬운 것은 세 작가 모두를 아우르는 거시적 행사가 준비됐더라면, 그래서 생전에 못한 교류의 장을 이 시대 필드에 있는 우리가 멋들어지게 준비했더라면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부터 반성된다. 예술의 충만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금, 위대하고 소중한 예술자산을 전승시키고 다 같이 누리는 방법에 더 익숙해지리라는 반성과 생각 끝에는 많은 세심한 준비를 더하라고 스스로에 주문한다.
정종효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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