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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역 문화·예술계가 조금은 들뜬 분위기다. 기대와 설렘, 약간의 두려움까지. 난생처음 놀이동산을 찾아, 보기만 해도 신기한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 마음이 이럴까. 창원 태생인 김종영(1915~1982)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다양한 행사가 오늘부터 시작됐다. 비록 행사의 출발지는 서울에 있는 김종영미술관과 서울대학교미술관이지만, 이들 전시의 개막과 함께 지역에서도 본격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김종영 선생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이자 교육자로, 한국 근·현대미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긴 거장(巨匠)이다. 지금의 창원 의창구 소답동에서 출생해 창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창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창원 사람’이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보통학교를 마친 후 고향을 떠나 주로 서울에서 활동을 했던 게 이유다. 선생이 타계하자 서울에서는 제자와 유족이 중심이 돼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를 설립, 미술관을 건립하고 매년 전시와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사업을 해오고 있다.
소답동에는 선생의 생가(生家)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원수 선생이 작곡한 ‘고향의 봄’ 배경지로 알려져 있다. 고풍스런 한옥의 모습을 그런대로 간직하고 있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향 창원에서 선생의 존재감은 여기까지다. 그동안 그 누구도 선생을 알려고도, 또 알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역 문화·예술 토양이 워낙 척박해서일까. 그도 그럴 것이 창원은 한국 제1의 기계·공업도시로 앞으로만 질주했지 과거도 옆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도 지난 1995년 ‘미술의 해 조직위원회’가 생가 앞에 표석(標石)을 세웠다. 선생이 ‘창원 사람’임을 알리기 위한 신호였다. 대개의 경우라면 불이(?) 붙을 만도 했지만, 이후로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다.
꼭 10년 뒤 창원미술협회가 나섰다. ‘창원미술 뿌리찾기’ 행사로 선생 알리기를 시작했다. 이어 창원예총이 해마다 학술세미나, 책자 발간, 다큐멘터리 제작, 스토리텔링 조성 등으로 알리기 노력을 이어갔다. 그러다 지난해 ‘김종영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그나마 그간의 불씨들이 모아졌기 때문에 출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토록 준비하며 기다리던 100주년을 맞았다. 위원회는 우성김종영기념사업회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사업의 시너지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쪽 인프라가 훨씬 체계적이고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선생이 ‘창원 사람이다’며 손을 내밀기가 몹시 쑥스러웠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쪽도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창원의 끈질긴 구애에 흔쾌히 손을 건넸다고 한다.
위원회가 내달 창원에서 펼치는 사업은 선생이 창원 태생임을 알리는 데 방점을 뒀다. 선생을 창원의 문화콘텐츠로 만들어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보다 많은 지역민들이 선생과 접촉할 수 있는 행사들을 준비했다. 위원회로서는 설레기도, 걱정스럽기도 하다. ‘탄생 100주년’이라는 기막힌 호기(好機)에도 결실이 없다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향후 기념사업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높은 건물, 휘황찬란한 도심, 널찍한 공원과 시원하게 뚫린 도로, 모두가 창원의 자부심이자 자랑거리다. 문화나 예술이 구색 맞추기는 아니지만, 여기에 선생이 가진 예술적 자산이 더해진다면 창원은 또 한 단계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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