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레 미제라블’ 번역사, 미술로 만나요
이정희 개인전, 7월 18일까지 창원 로그캠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의 첫 한글 제목은 무엇일까.
창원서 활동하는 이정희 작가가 창원 대안공간 로그캠프서 ‘레 미제라블을 읽고?’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2년 전 영상으로 본 ‘25주년 레 미제라블 뮤지컬’서 영감을 얻었다. 영상을 시작으로 오브제를 모으던 중, 레 미제라블 한글 제목을 접하게 됐다.
이 작가는 “레 미제라블에 꽂혔지만 사실 책은 읽지 않았다. 책에 얽힌 이야기가 좋았다. 전시 이름 뒤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다. (하하) 완성 작품은 없지만, 작업 과정을 공개하는 부록 같은 전시”라고 취지를 전했다.
작업 틈틈이 레 미제라블 연표와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레 미제라블은 ‘ABC계(1910)’로 시작해 ‘너 참 불상타(1914)’, ‘애사(哀史·1918~1922)’, ‘짠발짠의 설음(1923)’, ‘몸 둘 곳 업는 사람(1925)’ 제목 순으로 출간됐다. 자료는 국회·중앙도서관 홈페이지서 레 미제라블 번역본을 다운받거나 중고책을 구입해 수집했다.
이 작가는 “한국 최초 잡지 〈소년〉에 공화주의 혁명가들로 구성된 비밀 결사 조직 ‘ABC의 친구들(The Friends of ABC)’의 이야기가 실리면서, 레 미제라블은 ‘ABC계’로 처음 번역됐다. 우리나라 계모임처럼 ‘ABC계’라고 번안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ABC계 일부를 인용해 우리나라 계모임 회칙으로 재구성한 작품이 걸려있다. 잡지 〈청춘〉 특별부록으로 실린 ‘너 참 불상타’ 속 삽화와 줄거리 요약본은 독서감상문 형식으로 옮겼다. 레 미제라블 등장인물을 한복 입은 모습으로 재현한 점도 신선하다.
이 작가는 “소설가 민태원의 〈애사〉가 매일신보에 연재됐을 때 에밀 바야르의 삽화가 실렸는데, 번안된 이름이 재밌다. 코제트는 고설도, 장발장은 장발찬, 마리우스는 홍만서가 됐다. 그 시대에 읽히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의상도 한국식으로 바꿔보자 해서 판화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레 미제라블을 번역한 작가도 조명했다. 홍영후(짠발짠의 설음), 오천석(몸 둘 곳 업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 배경을 보여주는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홍영후와 동시대를 산 예술인들은 조선미술전람회를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낙인 찍혔다. 조선미술전람회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 그 시대에도 예술과 작가는 존재했다”면서 “오천석은 민주주의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작고한 1987년, 그해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민주화를 외치는데도 마스크가 필요했고, 코로나를 겪는 지금도 살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정체성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오브제들이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7월 18일까지 금·토·일 오후 1~7시 개방한다.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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