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한국전쟁 때 거제 포로들의 삶 어땠을까
‘캠프 넘버 원, 포로의 일상’기획전
거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서
내년 3월까지 사진 등 80여점 전시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에 수용된 포로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거제시 포로유적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거제도 포로의 일상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획전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을 15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거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에서 연다.
한국전쟁은 전쟁 포로의 대우를 명시한 제네바 협약이 처음 적용된 전쟁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소련은 포로관리를 두고도 치열한 또 다른 전쟁을 벌였다. 포로 관리 실태는 국제적십자의 점검 대상이자 전쟁 실적을 과시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유엔군은 1951~1954년 거제도에 수용됐던 전쟁 포로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기록과 사진을 남겼다.
침구를 정돈하는 포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국립민속박물관/
포로들의 공연 모습./국립민속박물관/이번 기획전에서는 거제시가 포로수용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수집한 포로등록증, 거제도 피란일기, 일지 등 미국 국립문서보관청(NARA)의 소장 기록과 사진, 영상 아카이브 자료 등 8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또 포로들의 수기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전쟁 포로의 삶이 재현된다.
특히 제93건설공병대대가 임시 수도 부산에 설치된 포로수용소를 대신할 신규 수용소 부지를 조사한 알바니 작전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다. 보고서에는 거제도를 현지 조사한 내용과 신규 포로수용소 부지로 거제도와 제주도 중 거제도를 선택한 이유 등을 담고 있다.
포로등록증. 포로가 포획된 날짜·위치 등을 기록하는 카드 형태의 등록증으로 포로의 목에 걸어 신원을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당시 유엔군은 포로 관리에 최소의 인력과 경비가 소요되고, 급수가 용이한 거제도를 선택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약 6㎢ 크기로 건설됐으며 4개 구역으로 이뤄졌으며 포로수용소에는 17만명의 포로와 3만명의 관리자 등 거제 원주민의 두 배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포로의 대부분은 중국군과 인민군 등 북측 군인이었으며 군인이 아니지만 유엔군이 의심스럽다고 판단된 여성과 아이들, 피란민도 있었다.
다양한 국적과 이념만큼 다양한 포로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수용소 문관(행정 인력)으로 일하던 최중훈이 작성한 피란 일기에는 북한군 포로로 잡혀온 아들과 상봉한 사연이 담겨 있다.
당시 전쟁 포로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도 전시된다. 수용동에서 포로들이 발행한 신문과 배급받았던 담배, 배식 받는 포로들의 모습과 포로공연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공개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포로자치제로 운영됐다. 포로 중에서 뽑은 간부를 통해 포로를 관리했으며 포로들은 방송반과 신문반을 꾸릴 수도 있었다. 포로들은 하루 세끼의 식사뿐만 아니라 담배도 제공받았으며, 전투에 나가 생사를 오갈 일도 없었다.
포로들은 직접 작물을 가꾸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포로들의 그림, 공예품 등을 전시하는 박람회, 포로들이 직접 기획하고 공연하는 음악회, 연극, 포로들을 위한 일종의 체육대회인 포로올림픽이 열리는 특별한 날도 있었다.
이번 전시는 2부로 구성했다. 1부 ‘캠프 넘버 원’에서는 포로수용소의 공간 구성과 그 안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부 ‘포로의 생활’에서는 포로의 하루 일과와 특별한 행사가 진행된 날들을 소개한다.
김성호 기자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