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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민춘추]만남 그리고 뒷모습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4.1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80
내용
[도민춘추]만남 그리고 뒷모습

-경남도민일보-

명작이나 명품은 꼭 크기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 성 싶다. 덩치는 커도 싱거운가 하면 작지만 크게 다가오는 알토란 같은 명화들도 있다.

조선의 화선(畵仙) 단원 김홍도가 남긴 노년의 걸작으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염불서승'이 이즈음 새삼 뇌리를 스친다.

사방이 한 자가 안 되는 베에다 먹 중심에 약간의 담청과 담황을 곁들인 소품으로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오르는 노스님의 정갈한 뒷모습은 더 없이 고귀하다.

모두의 바람이 극대화된 우리의 소망이 그대로 반영된 때문은 아닌지. 그야말로 뒷모습이 투명하도록 정갈한, 인생이란 무대에서 퇴장하는 모습에서 향내를 진동케 하는 그런 이들이 그리운 것이다.

조촐하게 미련·아쉬움 다 안고가는 뒷모습

저리도 조촐하며, 미련이나 아쉬움마저 다 안고 가는 분을 우리는 마냥 우러르게 된다. 효봉(1888∼1966)과 그의 제자 법정(1932∼2010)의 뒷모습 아니신가.

1966년 우리나라 현대 불교에 큰 획을 그은 효봉 스님이 세수 79세로 열반에 드셨다. 당시 도봉산 사찰에서 조계사로 향하던 운구 행렬이 미아리를 지나 동소문 고개를 넘어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동성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잠시 멈추었다.

가톨릭 재단 소속인 이 학교를 다니던 내겐 그 장엄한 행렬이 44년이 지난 중학생 때 일이나,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춘분이 지나고 눈이 내린 올해는 폭설이며 늦은 한파 등 날씨가 고르지 않았다. 경칩 엿새 뒤인 3월 11일 효봉의 제자로 불자만이 아닌 모든 이의 사표인 법정이 같은 세수에 입적한 소식을 접하자 다시 오래 전 그 때의 장면이 불현듯 되살아난다.

법정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다름 아닌 월간잡지 <신동아>에 실린 상좌로서 스승의 일생을 기록한 '효봉스님 일대기' 였다. 역사는 우리들 인간의 이야기이다. 범부(凡夫)로서 구도(求道)나 득도(得道) 과정은 적이 감동적이 아닐 수 없었다.

나아가 사람들은 모두가 무엇을 하건 자신만의 배역과 역할을 제대로 알고 실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케 하는 내용으로 다가왔다.

고교 은사인 박희진 시인의 시집 중 '미소하는 침묵'은 시인이 직접 만나고 접한 여러 종교 성직자들에 대한 감동을 읊은 시들로 이루어졌다. 이 중에는 법정이 지은 효봉에 관한 글이 연원인 시도 실려 있었다. 이 둘을 함께 접한 내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효봉·법정 스님을 우러러보는 이유

내게 인연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1970년 대 초반 대학생 때 수강한 예수회 손 에드워드 신부의 심리학 시간은 20여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법정 스님의 첫 수필집 <영혼의 모음>은 필독서 중의 하나였다.

수업시간에 스님을 모시고 특강을 들었고 질문할 수 있었던 기연도 있었다.

길상사 개문 전에도 그 곳에서 멀지 않은 민족유산의 보고 간송미술관에서 특별전이 열린 때면 화창한 봄과 청명한 가을은 문화의 정수와 더불어 사람의 향기로 마냥 흐뭇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가사를 절감케 하는 맑고 밝은 스님의 모습을 종종 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미' 특별전을 마치고 '버리고 떠나기'를 들고 공주와 청주 등 5년간 지방 생활을 하게 됐다.

아직도 만남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으니 그것은 싱클레어 안에 살아난 데미안이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음은 아닌지.

/이원복(국립광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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