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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마음 비우기- 이광수(수필가)
-경남신문-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건 한때일 뿐이다. 욕망은 새로운 자극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채워가는 삶은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한 인생이, 내 삶의 어디 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법정스님이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남긴 말씀이다. 산야에 핀 풀꽃처럼 순수한 삶을 살다 가신 스님의 잠언에 무슨 말로 더 가필할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인간이 현실적인 삶에서 욕망을 비우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필요한 물질을 획득하고 소모하는 것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욕심을 비운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흔히 쉬운 말로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신부도, 목사도, 스님도 다들 그렇게 말한다. 우린 어려운 일을 당하여 절망에 빠진 친구나 이웃에게 그렇게 말하며 위로한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이나 극락세계에 산다면 모를까 현실적인 문제가 앞길을 가로막고 서 있으면 속수무책 막막해진다.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주위의 그런 말들이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당장 자기 앞에 떨어진 불덩어리를 어떻게 피해가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다. 그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듯이 하는 일마다 꼬여들기 십상이다. 평소 남들이 보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겪게되는 정신적 고통 또한 배가 된다. 나를 과소평가하기도 하고, 과대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고통으로 갈등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왔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자존심의 상처는 자기 정체성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근자에 사회 유명인사들의 자살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자신을 지탱해 왔던 자존심의 상실이 우울증이라는 검은 그림자에 발목을 잡힌 결과이다. 나는 틀렸다. 나는 끝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사는 게 시시하다. 이런 자괴감이 자신의 뇌리를 반복해서 강박하면 어느 순간 삶을 단념하게 된다. 어쩌면 후자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버티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서울지하철역의 노숙자들처럼 되는 길이 바로 그런 류의 행태일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힘들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다난한 현대인의 삶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상의 삶 속에서 받는 심적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러나 어쩌겠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잠시 바쁜 삶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자. 그리고 작은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맑은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며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의 포로가 된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어렵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욕망의 높이를 줄이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이러한 습관이 반복되면 생을 포기하는 극단적 행동을 미리 막아 주는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지 않겠는가. 비록 이 세상이 참으로 실망스럽지만 긍정과 희망의 기대감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세월이 오지 않겠는가.
이광수(수필가)
-경남신문-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건 한때일 뿐이다. 욕망은 새로운 자극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채워가는 삶은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한 인생이, 내 삶의 어디 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법정스님이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남긴 말씀이다. 산야에 핀 풀꽃처럼 순수한 삶을 살다 가신 스님의 잠언에 무슨 말로 더 가필할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인간이 현실적인 삶에서 욕망을 비우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필요한 물질을 획득하고 소모하는 것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욕심을 비운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흔히 쉬운 말로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신부도, 목사도, 스님도 다들 그렇게 말한다. 우린 어려운 일을 당하여 절망에 빠진 친구나 이웃에게 그렇게 말하며 위로한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이나 극락세계에 산다면 모를까 현실적인 문제가 앞길을 가로막고 서 있으면 속수무책 막막해진다.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주위의 그런 말들이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당장 자기 앞에 떨어진 불덩어리를 어떻게 피해가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린다. 그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듯이 하는 일마다 꼬여들기 십상이다. 평소 남들이 보는 자신에 대한 생각이나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겪게되는 정신적 고통 또한 배가 된다. 나를 과소평가하기도 하고, 과대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고통으로 갈등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왔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자존심의 상처는 자기 정체성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근자에 사회 유명인사들의 자살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자신을 지탱해 왔던 자존심의 상실이 우울증이라는 검은 그림자에 발목을 잡힌 결과이다. 나는 틀렸다. 나는 끝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사는 게 시시하다. 이런 자괴감이 자신의 뇌리를 반복해서 강박하면 어느 순간 삶을 단념하게 된다. 어쩌면 후자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버티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서울지하철역의 노숙자들처럼 되는 길이 바로 그런 류의 행태일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도 힘들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더 힘들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복잡다난한 현대인의 삶은 치열한 경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상의 삶 속에서 받는 심적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러나 어쩌겠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잠시 바쁜 삶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자. 그리고 작은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맑은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며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의 포로가 된 자신을 뒤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 어렵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욕망의 높이를 줄이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이러한 습관이 반복되면 생을 포기하는 극단적 행동을 미리 막아 주는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지 않겠는가. 비록 이 세상이 참으로 실망스럽지만 긍정과 희망의 기대감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세월이 오지 않겠는가.
이광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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