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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열풍' 지역 업체엔 한겨울 삭풍
전국적 유통망 갖춘 대형업체 지역 영세업체 시장마저 위협
-경남도민일보-
'막걸리, 맛걸리'를 기획한 건 순전히 지난해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 때문이었다. 여기에 발맞춰 우리 지역민들이 손수 빚은 막걸리를 하나씩 소개하고 기록으로도 남기려는 취지였다. 술도 한 잔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기자에게 막걸리는 참 어려운 술이었다.
초반에는 막걸리를 빚는 과정도 양조장 주인에게 몇 차례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됐다. 깊이 맛보고 진탕 취하고도 싶었지만, 게으른 탓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홀짝홀짝 한 모금씩 마시는 수준에 그쳤다. 주인장의 설명에 의존해 기사를 쓴다는 지적이 당연히 있었다.
애초에 완전한 기획을 바란 건 아니지만, 불완전하게 끝을 맺게 됐다. 섭외하기가 어려워 둘러보지 못한 양조장이나 음식점이 참 많은 것이다. 허가받지 않고 술을 팔아 취재를 하고도 알리지 못한 집도 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제쳐놓고, 그동안의 결과물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 막걸리는 지면에 소개할 만큼 대규모 양조장도 아니고, 그냥 시골 동네에서 조그마하게 운영하고 있다." 취재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인장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막걸리 열풍'을 참으로 무색하게 했다. 열풍의 근원을 찾으면 대도시이고, 열풍을 이끄는 제품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몇몇 제품이 전국 단위로 유통 구조를 꿰차고 있어 지역 막걸리 시장마저 어지럽힌다는 볼멘소리는 취재할 때마다 들었다. 그렇다면, 이른바 우리 지역 또는 동네 막걸리가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술을 담그는 방식이 대동소이하고 허가 없이는 함부로 술을 빚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제주 과정을 바꾸거나 새롭게 개발해 차별화하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다. 동네 막걸리가 특색을 살리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두 가지 꼽아봤다.
◇옛 맛을 되살리자 = 통밀을 쓴 누룩과 멥쌀로 조선수군 주를 최근 개발해 내놓은 마산대학 막걸리연구센터의 이장환 교수(국제소믈리에과)는 "막걸리는 보통 만드는 방식이 같고 그 형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차별화가 쉽지 않다"며 "전통도 되살리고 세련된 맛을 내려면 누룩이 좋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지역 영세 양조장들이 술을 빚는 방법은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발효제로 누룩을 쓰거나 효모에 곰팡이를 인위적으로 주입(입국)해 누룩 대체재라 할 수 있는 걸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누룩을 사용하면, 천연 효모와 섞여 복합적인 맛이 나온다고 했다.
지금 막걸리는 옛날 맛이 아니다. 걸쭉하면서 시큼하고 텁텁했던 막걸리의 맛이 근래 들어 달곰하게 변했다. 여성이나 외국인이 막걸리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맛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소비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은 막걸리 열풍의 긍정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 막걸리의 맛이 한결같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전통 방식 그대로 순수하게 지켜나가야 좋은 막걸리가 나올 것"이라며 "술 맛을 결정하는 것도 누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인기를 끄는 복분자 막걸리나 과일 막걸리 등이 나와 막걸리의 맛이 한층 나아지는 건 아니다. 그는 "진달래, 국화, 솔잎 등 일종의 첨가물을 넣는 건 알코올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화장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 건 술 자체의 본질을 건드리진 못한다. 독일도 맥주의 향을 더해주는 향신료 '홉' 이외엔 다른 재료를 일절 못 넣게 하며 순수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특산물 활용 특색 찾아야
◇지역 농산물과 손잡자 = 쌀 막걸리가 대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밀가루를 섞어 쓰는 게 지역 영세 양조장의 현실이다. 전통 그대로 고수하거나 새롭게 거듭나려면 투자가 있어야 하지만, 여력이 없기도 하다. 맛보다는 가격 면에서 치중하다 보니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마다 다른 막걸리 맛의 세밀한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테면 양조용 쌀을 따로 만드는 등 덩달아 쌀 정책도 하루빨리 바뀌고, 자치단체도 막걸리를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높은 가치를 매겨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처에 문 닫은 업체가 많다. 전부 부산 생탁이나 포천 막걸리 등이 점령했다. 이렇게 가면, 시골 막걸리도 옛날 소주처럼 다 없어질 것이다. 죽어가는 양조장을 억지로 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 자연 소멸하는 것과 지금처럼 시장 기능에만 맡겨 의욕을 꺾는 것은 다르다. 국세청과 자치단체는 반짝 홍보가 아니라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도록 마케팅 통로를 마련해주거나 도움을 줘야 한다." 하동지역 한 양조장 주인장의 얘기다.
전통 술 평론가로 이름난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도 맛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국에는 약 800개 양조장이 있긴 하지만, 맛도 800개는 절대 아니다. 그러면서 지역 막걸리가 나아갈 방향은 지역 특색을 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지역 쌀이나 특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시골 할매 막걸리'의 조막심(82) 할머니가 직접 빚는 유자잎 막걸리, 하동에서 난 쌀을 쓰는 하동군 화개면 화개합동양조장의 화개장터 막걸리, 남해 쌀과 마늘을 쓰는 ㈜초록보물섬의 마늘 막걸리 V1, 창원지역 햅쌀로 써서 담근 ㈜맑은내일의 누보 우리 쌀 막걸리, 산에 있는 솔눈을 따서 쓰는 합천 가회면 '청목주가'의 솔잎 막걸리 등이 본보기가 되겠다. <끝>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전국적 유통망 갖춘 대형업체 지역 영세업체 시장마저 위협
-경남도민일보-
'막걸리, 맛걸리'를 기획한 건 순전히 지난해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 때문이었다. 여기에 발맞춰 우리 지역민들이 손수 빚은 막걸리를 하나씩 소개하고 기록으로도 남기려는 취지였다. 술도 한 잔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기자에게 막걸리는 참 어려운 술이었다.
초반에는 막걸리를 빚는 과정도 양조장 주인에게 몇 차례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됐다. 깊이 맛보고 진탕 취하고도 싶었지만, 게으른 탓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홀짝홀짝 한 모금씩 마시는 수준에 그쳤다. 주인장의 설명에 의존해 기사를 쓴다는 지적이 당연히 있었다.
애초에 완전한 기획을 바란 건 아니지만, 불완전하게 끝을 맺게 됐다. 섭외하기가 어려워 둘러보지 못한 양조장이나 음식점이 참 많은 것이다. 허가받지 않고 술을 팔아 취재를 하고도 알리지 못한 집도 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제쳐놓고, 그동안의 결과물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 막걸리는 지면에 소개할 만큼 대규모 양조장도 아니고, 그냥 시골 동네에서 조그마하게 운영하고 있다." 취재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인장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막걸리 열풍'을 참으로 무색하게 했다. 열풍의 근원을 찾으면 대도시이고, 열풍을 이끄는 제품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몇몇 제품이 전국 단위로 유통 구조를 꿰차고 있어 지역 막걸리 시장마저 어지럽힌다는 볼멘소리는 취재할 때마다 들었다. 그렇다면, 이른바 우리 지역 또는 동네 막걸리가 살아남을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레 뒤따랐다. 술을 담그는 방식이 대동소이하고 허가 없이는 함부로 술을 빚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제주 과정을 바꾸거나 새롭게 개발해 차별화하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다. 동네 막걸리가 특색을 살리고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두 가지 꼽아봤다.
◇옛 맛을 되살리자 = 통밀을 쓴 누룩과 멥쌀로 조선수군 주를 최근 개발해 내놓은 마산대학 막걸리연구센터의 이장환 교수(국제소믈리에과)는 "막걸리는 보통 만드는 방식이 같고 그 형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차별화가 쉽지 않다"며 "전통도 되살리고 세련된 맛을 내려면 누룩이 좋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지역 영세 양조장들이 술을 빚는 방법은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발효제로 누룩을 쓰거나 효모에 곰팡이를 인위적으로 주입(입국)해 누룩 대체재라 할 수 있는 걸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누룩을 사용하면, 천연 효모와 섞여 복합적인 맛이 나온다고 했다.
지금 막걸리는 옛날 맛이 아니다. 걸쭉하면서 시큼하고 텁텁했던 막걸리의 맛이 근래 들어 달곰하게 변했다. 여성이나 외국인이 막걸리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 맛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소비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은 막걸리 열풍의 긍정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 막걸리의 맛이 한결같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전통 방식 그대로 순수하게 지켜나가야 좋은 막걸리가 나올 것"이라며 "술 맛을 결정하는 것도 누룩"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인기를 끄는 복분자 막걸리나 과일 막걸리 등이 나와 막걸리의 맛이 한층 나아지는 건 아니다. 그는 "진달래, 국화, 솔잎 등 일종의 첨가물을 넣는 건 알코올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화장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 건 술 자체의 본질을 건드리진 못한다. 독일도 맥주의 향을 더해주는 향신료 '홉' 이외엔 다른 재료를 일절 못 넣게 하며 순수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특산물 활용 특색 찾아야
◇지역 농산물과 손잡자 = 쌀 막걸리가 대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밀가루를 섞어 쓰는 게 지역 영세 양조장의 현실이다. 전통 그대로 고수하거나 새롭게 거듭나려면 투자가 있어야 하지만, 여력이 없기도 하다. 맛보다는 가격 면에서 치중하다 보니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마다 다른 막걸리 맛의 세밀한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테면 양조용 쌀을 따로 만드는 등 덩달아 쌀 정책도 하루빨리 바뀌고, 자치단체도 막걸리를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높은 가치를 매겨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근처에 문 닫은 업체가 많다. 전부 부산 생탁이나 포천 막걸리 등이 점령했다. 이렇게 가면, 시골 막걸리도 옛날 소주처럼 다 없어질 것이다. 죽어가는 양조장을 억지로 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경쟁을 통해 자연 소멸하는 것과 지금처럼 시장 기능에만 맡겨 의욕을 꺾는 것은 다르다. 국세청과 자치단체는 반짝 홍보가 아니라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도록 마케팅 통로를 마련해주거나 도움을 줘야 한다." 하동지역 한 양조장 주인장의 얘기다.
전통 술 평론가로 이름난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도 맛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국에는 약 800개 양조장이 있긴 하지만, 맛도 800개는 절대 아니다. 그러면서 지역 막걸리가 나아갈 방향은 지역 특색을 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지역 쌀이나 특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시골 할매 막걸리'의 조막심(82) 할머니가 직접 빚는 유자잎 막걸리, 하동에서 난 쌀을 쓰는 하동군 화개면 화개합동양조장의 화개장터 막걸리, 남해 쌀과 마늘을 쓰는 ㈜초록보물섬의 마늘 막걸리 V1, 창원지역 햅쌀로 써서 담근 ㈜맑은내일의 누보 우리 쌀 막걸리, 산에 있는 솔눈을 따서 쓰는 합천 가회면 '청목주가'의 솔잎 막걸리 등이 본보기가 되겠다. <끝>
이동욱 기자 ldo32@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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