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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세련되기 좋은 시간이다- 정기홍(문화체육부장)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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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327
내용
가을은 세련되기 좋은 시간이다- 정기홍(문화체육부장)

<경남신문>

주말인 지난 15일 밤 지인을 만나러 시내 모 카페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노래가 피아노 반주와 함께 감미롭게 들려왔다.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먼저 자리 잡은 몇몇 손님들도 이 노래를 다 아는 듯 이미 가을밤의 정취에 젖어 있는 듯했다.

이 노래는 KBS 주말 저녁 예능(오락)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곡으로, 클래식으로 편곡돼 지난 여름 두 달을 뜨겁게 달구었다. 7월초 첫 방영 때 서로가 잘 모르는 33명이 이 노래를 합창하려고 어설프게 모였지만, 부드럽고 열정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 박칼린 교수의 지휘 아래 점차 하모니를 이루며 거제에서 열린 전국합창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단원들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수상보다는 박칼린 교수의 표현대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최선을 다해, 끝내 해냈다는, 그런 눈물이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미 1등 이상의 성과’라는 TV 자막에 시청자 모두 공감했을 것이다. 사람을 웃기는 직업인 개그맨 윤형빈은 “합창이 사람을 울리네요”라며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민도가 높아진 흐름 때문인지 강호동의 사회로 진행되는 SBS의 주말 저녁 예능프로그램인 ‘스타킹’에서도 성악가들이 많이 출연한다. 시시콜콜한 얘기만 늘어놓는 예능프로그램의 생명은 이미 짧아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금시간대에 예능프로그램에서 ‘클래식’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클래식이, 예술이 주는 ‘감동’ 효과 때문이다.

어젯밤 마산 3·15아트센터에서는 스물여섯 번째로 ‘노산 가곡의 밤’이 열렸다. 노산 이은상(1918~1982)이 쓴 ‘옛 동산에 올라’, ‘동무생각’, ‘사랑’ 등 주옥 같은 시들이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져 테너와 바리톤, 소프라노의 소리를 타고 예향 마산을 지켜 주고 있었다. 그 시간 3·15아트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행복했던 것은 문학과 음악, 그리고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지금 가을이 한가운데 서 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자. 아름다운 공연들이, 아름다운 그림들이 신이 내려준 찬란한 계절과 함께 천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공연과 전시뿐인가. 책 읽기도, 여행하기도 얼마나 좋은 계절인가. 독서는 간접 여행이고, 여행은 직접 독서다. 한국의 10월, 그리고 일 년의 절반 틈을 둔 4월은 우리 삶의 황금시간대다.

지금 독서하기 참 좋은 계절이고, 그 계절이 서서히 깊어 가고 있다. 지식과 교양의 향유를 위해 책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런데 책이라는 게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책’을 선택했다. 아프리카의 혈통을 받았고, 동양에서 성장했고, 현재는 미국의 외딴섬에서 교육받고 있는 자신은 누구인가를 찾기 위해 청년 시절 필사적으로 온갖 책 속을 헤맸다.

이런 바탕 위에서 책 쓰기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저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성공적으로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연설이 지루하지 않는 것은 1차적으로 목소리의 크기, 높이, 적절한 변화 구사 등에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그의 연설에는 듣는 이가 장면을 그릴 수 있도록 인물, 시간, 장소 등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강화하고, 듣는 이를 집중시키며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정치가 오바마 소통의 수단은 지금도 책이다.

창원 성산아트홀 앞 터널로 이뤄진 낙엽길은 가을이 되면 그 자체가 예술이 돼버린다. 이 길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와 색감을 내기 일보 직전이다. 이 좋은 계절에 한번쯤 음악, 미술, 문학을 접해 보자. 가을에 예술을 접하면 사람이, 삶이 깊어지고, 참 세련돼진다.

정기홍(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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