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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방의 노화백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림과의 이별을 고했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무서리 치듯 지난했던 세월을 맞았어도, 90이 훌쩍 넘도록 예술의 호흡으로 살다가, 물감으로 범벅된 작업복을 머리맡에 괜 채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그림은 그의 전부였으리라. 붓과 함께 물들었던 손으로, 그려낸 꿈을 보며 행복해 했고, 내일 또 찾을 것이라는 꿈으로 가득했던 그 눈빛은 오래전 보았던 어느 시골노인의 눈빛과 너무 닮아서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시골의 산골 동네다. 언덕을 따라 계단처럼 이어진 논길을 오르면, 막다른 길의 정면에 오두막 한 채가 보인다, 문 앞에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항상 놓여 있고, 점심 나절이면 구부정한 자세로 그곳에 앉아서 해맑은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던 노인 한 분이 있었다. 20여년 가까이 뵈었던 모습인데 몇해 전, 9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의자와 요구르트 한 봉지를 선물한 것이 연이 되어 종종, 별다를 게 없는 서로의 근황으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친구분들은 없으세요? “벌써들 가고 나만 남았지 뭐, 그래도 저 소나무 바라보모 친구들의 소리가 들리요, 어릴 때 놀이 삼아 같이 심었는데 저리 컸네 허!” 그는 평생을 그곳에서 소와 함께 쟁기를 끌며, 손수 깎은 지게와 무딘 낫으로 자식 셋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켜 멀리 보냈다. 그래서 할 일을 다해 마음이 놓인다고 한껏 으쓱해 보이며 자랑하던 그 노인은 세상 구경이란, 일 년에 서너 번 읍내 시장 구경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날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진 손톱과 굳은살 덮인 손으로 건네 주던 작은 나무지게! “직접 깎아 만든 것이요, 이녁이 준 색깔 좋은 의자와 요구르트, 맨날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하고, 웃어 보였던 눈은 세상 어떤 이의 사색도 넘볼 수 없을 만큼의 맑은 빛으로 반짝였다.
‘격(格)을 갖는다’는 것을 ‘그러했기에 주어진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생(生)의 들길에서 각자의 꿈을 꾸며 살았던 두 사람, 꿈을 위해 참된 최선을 다했으리라! 그래서 그들의 눈빛에는, 결코 다를 수 없는, 격이 서려 아름다운 눈으로 보인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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