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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말'한글은 과학'...오용 심하고 잘못된 표기법도 정비해야
중국에서 유학 중이던 졸업생이 연말연시라 인사차 연구실에 들렀다. 한·중 언어를 비교 연구하는 학생이라 화제 역시 양쪽 말의 특징이나 차이에 관한 것이 되었다.
“중국어는 예술이고, 한국어는 과학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어려운 선생 앞인데도 꽤나 단정적인 말투였다. 베이징 거리에서 휴대폰 문자를 치다 보면 어느새 구경꾼들에게 에워싸이는 경우가 적지 않단다. 번거로운 한자 변환도 필요 없고, 소리대로 치기만 해도 뜻이 전달되는 걸 신기해 한단다. 뜻글문화가 소리글을 보는 문화충격이겠지만, 알파벳으로 음을 치고 제시된 한자 중 하나를 선택해 변환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해, 딴짓하며 손가락만 놀려 생각을 바로 전하는 편리함은 상상 못할 일이다.
표음문자의 일본도 히라가나라면 우리와 비슷하지만 한자 변환의 번거로움은 중국과 다르지 않다.
한국이 IT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로 한글을 지적하는 생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 졸업생의 “한글은 과학이다”라는 외침은 다른 언어를 쓰면서 피부로 느꼈던 우리말의 우수성을 웅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지만 그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렇게 훌륭하고 과학적인 우리말이건만, 요즈음에는 참 이해하기 어렵고 오용되는 경우가 너무 빈번한 것 같다. 인터넷이나 휴대폰에서 날마다 탄생하는 신조어에 대한 저항은 이미 무의미하고,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존칭이나 경어의 혼란은 물론, 국제화사회라면서 이미 4반세기나 지난 외래어표기법에 구속되거나, ‘우리말 순화론’이란 시대착오적 발상은 되레 우리말의 훼손을 부채질하고 있다. 상품가격을 물으면, “오천 원 되세요”라든지, 여성의류나 장신구 가게서 물건을 가리키며 “이 애는 얼마고, 저 아이는 참 예쁘죠?”라는 표현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커피 나오십니다, 주차장은 이쪽이십니다”라는 안내에는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존칭어의 오용은 손님이 아니라 팔고 사거나 이용하려는 물건이나 장소를 높이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혹시 이러한 잘못이 우리들의 배금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더구나 이러한 멘트나 안내가 손님 맞는 절의 각도나 손동작까지 가르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횡행하고 있어, 잘못된 교육의 연속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잘못 배운 젊은이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그릇된 우리말을 다시 전파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장관직의 퇴진으로 이어졌던 ‘오렌지’의 발음 ‘어린지’는 외국어와 외래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음이었지만, 외국의 발음을 충실하게 표기하는 것은 외래어 표기의 원칙이기도 하다. 1986년 문교부 고시의 외래어표기법에는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도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 표기에서 ‘토쿄’는 ‘도쿄’로, ‘큐슈’는 ‘규슈’로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일어 표기에서 말머리에 센소리가 오면 안 된다는 규정이지만, 일본의 공항과 역에는 ‘Dokyo’가 아닌 ‘Tokyo’, ‘Gyushu’가 아닌 ‘Kyushu’로 쓰여 있다. 우리 표기라면 도쿄는 도교(道敎), 규슈는 아홉의 큐슈(九州)가 아니라 소의 규슈(牛州)로 오해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칸’(菅) 총리를 ‘간’이라 쓰지만 일본어에서 ‘간’은 질병의 암(癌)을 뜻한다. 이웃나라 수상을 ‘암총리’로 불러서 되겠는가? 순화를 위해 된소리나 센소리를 지양하자고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맞는다지만, 그러면 왜 ‘짬뽕’은 ‘잠뽕’이라 하지 않는가? 일본어의 짬뽕이 여기서는 왜 머리에 된소리를 써도 되는지? 우리들의 잘못된 언어 사용도 문제지만, 오래되고 잘못된 우리말 표기법의 정비는 더욱 시급한 문제다.
이영식(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인제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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