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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을 걷다 (6)
통영 '토영 이야~길' 제2코스-미륵도 길
미륵산 오르면 한려수도 섬,섬,섬
미술관·기념관에는 거장들 예술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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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향기를 맡으며, 역사의 숨결과 통영의 아름다운 비경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바로 통영에 있는 ‘토영 이야~길’이다.
토영 이야~길 제1코스(예술의 향기길)를 두 편에 나눠 이미 소개했고, 오늘은 제2코스(미륵도 길)를 거닐어 보자.
제1코스가 통영이 자랑하는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확인하고, 자랑스런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는 코스라면, 제2코스는 예술인들의 발자취와 역사의 현장뿐만 아니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통영의 비경도 감상할 수 있는 코스여서 매력 만점이다.
제2코스(미륵도 길) 18개 방문지를 모두 둘러보려면 미륵산과 현금산 두 곳을 등반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등산화를 신고, 간단한 먹을거리와 물을 담은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게 상책이다. 제2코스를 모두 찾으려면 평균 6시간이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 몇 곳을 빼먹고 스쳐 지나갈 수 있어 평균 소요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다.
출발지는 해저터널이다. 전편에 소개했듯이 일제에 의해 해저터널이 만들어져 이 일대는 다릿길, 뱃길, 바다밑길이 생겨 한국 유일의 삼중 교통이 존재하는 곳이 됐다. 예전에는 이 해저터널로 버스가 다녔다고 한다. 해저터널을 지나면서 ‘머리 위로 바닷물이 찰랑인다’고 생각을 하니 전신이 오싹해진다. 해저터널을 통과하자 미수동 운하맨션 벽면에 수놓인 벽화가 방문객을 반긴다.
5분쯤 걸었을까. 김춘수 유품전시관에 도착했다. 지난 2008년 개관한 이곳은 김춘수 선생의 자필원고 126점과 사진을 비롯,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와 옷가지 등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2층 전시관 한쪽에는 선생이 생전에 기거하던 방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생가모형도 전시하고 있다. 월요일 휴관.
김춘수 유품전시관을 나와 골목길을 조금 걸으면 봉평동 지석묘가 나온다. 통영 미륵산의 바다와 만나는 해평 마을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자료이다. 지금은 도시가 들어서 지석묘가 모두 사라지고 이곳에 2기만 남아 있다.
지석묘 인근에는 해평열녀사당이 있다. 해평열녀 설화는 통영에 전해오는 수많은 열녀 이야기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데, 현재 ‘각(閣)’만 있고 비석은 ‘봉수골 비석군’에 보존돼 있다.
해평열녀사당에서부터 고갯길을 올라가면 봉수골 비석군이 나온다. 통영중학교 인근 야트막한 양지바른 언덕에 통영지역 마을 곳곳에 있던 비석 30여 기를 안치한 곳인데, 이 비석군들이 통영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통영시민들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듯하다.
현대미술의 거장 故 전혁림 화백을 기념하는 전혁림미술관도 금방 찾는다. 이곳은 전 화백이 30여 년가량 작품활동을 한 곳으로 지난 2003년 지어졌다. 지난해 5월 아흔여섯 살의 나이로 작고하기까지 노 화백의 주옥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한 전 화백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 월·화요일 휴관
전혁림미술관을 나오면 본격 등산 채비를 해야 한다. 토영 이야~길 제2코스는 등반 코스가 2곳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용화사가 있는 미륵산 방면 등반이다. 산이 그리 높지 않아 쉬엄쉬엄 올라가면 통영 바닷가와 고즈넉한 오솔길을 거닐 수 있어 딱이다.
미술관에서 언덕길과 비스듬한 산길을 10여분 걸으면 용화사에 도착한다.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화상이 최초로 창건한 사찰로, 몇 차례 수해와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선 영조 때 벽담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했다.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은 뒤 용화사 밑 오솔길을 따라 또다시 등반을 한다. 이곳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관음암과 도솔암이 나온다. 수림 사이로 저 멀리 통영항이 보이고, 숲향도 맡을 수 있는 편안한 산길이다.
아담한 도솔암에서 힘찬 기운을 한껏 받고 이제 미륵산 정상을 올라간다. 도솔암에서 미륵산 정상까지는 30~40분이 소요된다. 10여 분 걸었을까. ‘미륵치’라는 곳이 나온다. 미륵치는 한마디로 산중에 있는 ‘삼거리 고개’이다. 미륵치에서 용화사로 내려갈 수 있고,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현금산과 산양읍 방면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산중 삼거리 교차로’인 것이다.
미륵치에서 미륵산 정상까지는 다소 가파른 곳이어서 힘이 든다. 평소 운동이 돼 있지 않으면 쉬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끝까지 참고 올라가면 등반을 포기하려던 조금 전 마음을 금방 후회하게 만든다.
드디어 미륵산 정상.
“야~호” 소리가 나올 법하지만 장엄한 역사의 승전보를 목격한 한려해상 다도해가 한눈에 펼쳐지자 엄숙한 마음이 앞선다. 그 옛날 왜군들이 이 땅을 짓밟았을 때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이 충정으로 왜군을 물리친 거룩한 역사를 이 다도해는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다. 미륵산 정상에서는 사방팔방 조망이 가능해 뛰어난 자연경관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한산도 앞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통영관광개발공사 관광해설사 박정(70)씨가 메가폰으로 조선수군의 ‘학익진’ 전법에 대해 설명했다. 장엄한 역사의 현장에서 관광해설사의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역사의 위대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아 버린다. 물론 장대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풍치에 매료된 채로.
미륵산 정상에는 통영항 전망대, 6·25 통영상륙작전 전망대, 한산대첩 전망대 등 전망대가 많아 관광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두근두근 놀란 가슴을 안고 다시 미륵치로 내려와 이제 박경리기념관을 찾아가야 한다. 기념관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어서 미끄러짐에만 주의하면 별 고생 없이 하산한다.
40~50분쯤 내려왔을까. 지난해 5월 5일 개관한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박경리 선생의 일생이 연표와 사진으로 전시돼 있고 유품과 육필원고, 영상자료실도 완비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박경리기념관을 나와 찻길을 조금 걸으면 산양읍사무소가 나온다. 산양읍사무소는 3·1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당시 통영군민들이 산양면사무소의 등사기를 훔쳐 ‘동포에게 격하노라’라는 격문을 등사한 후 일본경찰에 모두 체포되는 수난이 있기도 했다.
이제 토영 이야~길 제2코스 등반코스 2곳 중 마지막 현금산 등반에 나서야 한다. 등산시간이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끝까지 도전할 수도 있고, 힘들다 싶으면 버스를 타고 통영대교로 찾아가면 된다. 현금산을 올라가면 내려오는 길은 미수동 체육공원 쪽이다. 체육공원에서 통영대교를 건너 경상대 해양과학대학을 거쳐 다시 해저터널 앞으로 돌아오면 토영 이야~길의 모든 코스 방문이 끝나게 된다.
토영 이야~길만 충실히 둘러봐도 우리나라 문화·역사·자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만큼 통영과 토영 이야~길에는 많은 예술성과 역사성, 자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둘레길이든, 토영 이야~길이든 주의사항이 있다. 토영 이야~길 길잡이 송수언씨는 “생선이나 농작물은 절대 손대지 않고, 도로변을 지날 때 안전사고 주의,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지날 때 예의 지키기, 내가 만든 쓰레기 반드시 되가져 가기, 나무나 꽃을 꺾지 않기 등을 꼭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토영 이야~길을 둘러보면서 앞으로 통영의 역사와 문화와 자연경관이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 ‘토영 이야~길’이 더 체계적으로 운영돼야 하고, 안내체계 운용, 스토리텔링에 사용되는 책자 보급, 길잡이·해설사 확대 및 교육 지원 등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길에서 만난 맛집- 항남동 다찌집 ‘벅수실비’
굴·산낙지·꽃게·전복·물메기 알조림…
푸짐한 해산물 한 상에 소주 한 잔 캬아~
통영의 ‘토영 이야~길’ 제1코스, 제2코스를 하루에 모두 둘러보는 것은 힘들다. 중간중간 방문지를 생략하면 가능할지 모르나 그러면 제대로 된 체험이 될 수 없다. 큰마음 먹고 1~2코스를 모두 찾으려면 적어도 1박2일이 소요된다. 통영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면 저녁 시간이 무료해질 수 있다. 지인들과 통영의 명물 중 하나인 다찌집을 찾아 풍성한 먹거리를 즐기는 것도 색다른 문화체험이다.
통영항 문화마당 인근 포트극장 옆에 있는 ‘벅수실비(대표 김수진)’에는 그날그날 들어오는 신선한 해산물과 야채로 푸짐한 상을 차려낸다. 통영 사람들이야 다찌를 자주 찾을 수 있겠지만 바다가 가까이 있지 않은 도시에는 신선한 해산물이 늘 그립기만 하다.
우선 앞요리로 굴떡국이 살짝 등장한다. 겨울에는 특히 굴이 제철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볼락 깍두기는 주인 김수진씨가 직접 담갔는데, 푹 삭은 볼락의 쌔한 맛과 깍두기의 시큼한 맛이 조화를 이뤄 젓가락을 자주 가게 만든다. 통영지역에서 제사상에 많이 올리는 삼벵이를 찜으로 만들었는데 쌉쌀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참기름장에 벼무려진 산낙지를 찍어 소주 반잔 들이켜고 요놈을 한입 먹으면 피로해진 온몸에 원기가 솟는 듯하다.
이쯤 되면 본격적인 해산물 요리가 마구마구 쏟아진다. 계절에 맞게 차려진 횟거리는 물론, 가오리, 생굴, 멍게, 개불, 전복이 쟁반 위에 누워 있다. ‘날 잡숴 보소’ 하면서.
눈도 바쁘고, 손도 바쁘고, 입도 바쁘다. 이번에는 구경하기 힘든 알배기 꽃게가 잘 쪄져 등장하고, 귀하디 귀한 털게가 불그스레 수줍은 모습으로 상 위에 드러눕는다. 고소함이 극치에 달할 때 제철 제비가자미 구이가 나오고, 물메기 알 조림이 맛있게 등장해 입안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터트린다.
주인 김씨는 “서울 사람들이 푸짐한 상다리를 보고 놀란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젓갈과 된장으로만 맛을 내기 때문에 외지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며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 만큼 남기지 않고 즐겁게 드시는 게 제일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 641-4684.
경남신문
글=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도움말=통영문화재단·통영예술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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