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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일본 오사카, 경기 파주, 경북 구미. 창원까지 포함하면 취재진은 고작 다섯 군데 산업단지를 돌아봤다. 국내외에 나름 '선진', '우수'라고 내세우는 산업단지는 무수히 많다. 이틀이나 사흘 현장취재로 샅샅이 보는 데 한계가 있었고, 더구나 내밀한 속사정을 들여다보기에는 처음부터 어려운 취재였는지 모른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각 산업단지 장점만 나열한 탓에 곧바로 독자 지적을 들을 수 있었다. 이김춘택 씨는 페이스북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에 글을 남겼다. "이동욱 기자의 기획연재 기사 '산업단지의 미래를 찾아 - 4) 파주출판도시'는 퍽 아쉬운 기사다. 특히 '지혜의 숲'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부분은 기자가 출판도시와 관련해 깊이 있게 들여다 보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구나 느끼게 한다."
이와 함께 그는 '지혜의 숲'과 파주출판도시를 비판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글을 소개했다. 한 소장은 지난 6월 파주출판도시에 문을 연 '지혜의 숲' 공간이 책을 데이터베이스화하지 않았고 사서가 아닌 자원봉사 수준 임시직이 관리하는 등 전반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아울러 생활친화적 도시가 아닌 탓에 저자와 번역가도 피한다는 점이나 북카페 경쟁 같은 파주출판도시 이면도 들춰냈다.
이번 기획기사는 이런 면을 담아내지 못했다. 비단 파주출판도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구조 고도화 사업을 둘러싼 지역 갈등도 상세히 지면에 옮기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와 오사카 사례에서도 실무자나 관련된 인물이 아닌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파주출판도시 예처럼 같은 업종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고, 산업단지 변화상을 두고 각기 다른 평가와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성과는 덮어놓고 비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혁신산단'으로 탈바꿈할 창원국가산업단지는 전국, 세계 곳곳의 산업단지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여러 사례에서 벤치마킹을 할 수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도 된다. 기획취재를 계기로, 또 연구자들의 분석을 토대로 창원국가산단이 그려야 할 미래상을 정리했다.
◇협력 없이 나아가기 어렵다 = 최근 LG전자 R&D(연구개발)센터 무산 소식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혁신산단 사업에는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도, 창원시가 모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힘을 모으는 모습인데, 이보다 더 추진력이 큰 환경이 마련되기도 쉽지는 않다. 여기에 내부 구성원인 산업단지 입주업체와 민간 사업자 의지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혁신산단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R&D센터 건립은 흐지부지돼버렸다. 민간 사업자이자 입주기업, 지자체, 산단공이 엇박자를 냈기 때문이다. 협상 가능성이 완전히 묻힌 것은 아니지만, 혁신산단이 제대로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이런 모습을 보여준 데 대해 이웃 기업 등 경제계에서도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산업단지 안 대기업과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꾸려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22@(아로바) 네트워크'는 좋은 본보기다. 입주기업 의견을 모아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소통하는데, 산업단지 지구를 변화시키는 '22@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확실했다.
창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역 경제인과 정치인 등이 참여하는 일명 '창의혁신포럼'이 곧 꾸려져 혁신산단 사업을 논의하고 조언도 한단다. 포럼이 형식적인 단체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산업단지와 도시라는 쌍생아 = 산업단지 재생 또는 변화도 결국에는 도시 재생과 변화를 말한다. 거의 모든 산업단지가 도시를 끼고 형성돼 있거나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창원도 대표적인 예다. 창원산단이 들어서면서 옛 창원시라는 배후도시도 태어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시와 오사카시는 산업단지 재개발과 재편으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파주출판도시는 이름 그대로 산업단지가 아닌 도시로 불리기를 원한다. 구미 또한 산업단지가 확장하면서 새 단지 근처에 부도심이 생겨난 모습이다.
산업단지를 바꾸려면 도시 틀과 삶을 바꾸려는 의지와 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남에서 진행되는 혁신산단, 재생산단 사업도 나중에는 도시 변화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창원산단 내 경남테크노파크 일대에 조성될 예정인 융복합 집적단지도 도시산업의 미래와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자 구축되는 것이다.
1968년 공업단지로 출발해 오래된 진주 상평일반산업단지도 재생산업단지로 거듭난다. 이 역시 옛 도심 재생과 연관돼 있다. 진주시 기업통상담당관실 관계자는 "상평산단이 외곽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이라서 정비 필요성이 커졌다"며 "구도심 재생 사업과 맞물려 있다. 산업단지만 재생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미래학자로 이름난 존 나이스비트와 도리스 나이스비트 부부는 지난 4월 1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40주년 기념 대한민국 산업발전포럼' 개막좌담회에서 '도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들은 "도시가 세계를 이끌고 있으며, 도시의 혁신 과정이 중요하다"며 "뉴욕, 도쿄, 상하이는 그야말로 거대 경제국이다. 창원과 같은 중간급 도시는 큰 성장 가능성이 있고, 훨씬 더 비즈니스에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맹이는 문화와 생태, 그리고 삶의 질 = 파주출판도시는 일하는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애쓰는 모습이었다. 주말과 어느 기간에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물론 그런 노력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또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건물을 지을 때는 유수지와 습지를 덮거나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살리려고 시도했다. 구미산단도 최근에 조성한 단지를 보면 넓은 공원을 바로 옆에 두고 있다. 이처럼 문화와 생태라는 가치는 미래 산업단지가 담아야 할 내용물이다.
김정후 영국 런던대학 도시연구 펠로(선임연구원)·JHK 도시건축정책연구소장은 〈산업단지, 미래를 생각하다〉(한국산업단지공단 펴냄)에서 영국 셰필드 사례를 소개했다. 과거 철강도시였던 이곳이 20세기 후반 쇠퇴해 이후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분석했다.
문화와 역사를 자산으로 새로운 공간이 됐다. "음악과 영상 등 크고 작은 문화예술 관련 기업이 자리를 잡은 문화산업지구는 셰필드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으로 부상했고, 셰필드 기차역으로 방문한 관광객과 기업인이 편안하게 걸으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황금루트 등은 기존에 셰필드가 보유한 유·무형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즉 모두 새로운 것에 의해 탄생한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같은 책에서 김정곤 토지주택연구원 도시재생연구실장은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와 뮌헨 림 친환경 복합산업단지를 "지속 가능성, 생태계 보전과 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려는 구체적인 방안이 수립된 사례"라며 산업단지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면 다년간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고, 건축물 계획 단계부터 불볕더위와 폭우 등 이상기후를 고려하고, 녹지 공간과 바람길도 만드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자체 발전 시스템을 구축해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도 줄인다.
창원산단도 남천 일대에 카페 등 문화산책거리를 조성할 예정이다. 현재 도심에는 공원이 많지만, 산업단지 안에는 거의 없는 편이다. 공장에 불이 꺼진 밤에는 카페 영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녹지나 친환경 공간은 어떻게 확보할지, 이 공간이 문화와는 또 어우러질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쌓여 있다.
요컨대 일하는 이들의 노동 환경이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으면 산업단지 발전도 무색할 수밖에 없다. 노동사회교육원 김정호 소장은 앞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일하는 조건이나 고용의 질이 열악하면 그 공단에는 활력이 생길 수가 없다"고 했고, 창원산단 시작과 함께 일해온 세방전지 창원생산본부 명장 김점세(53) 씨도 "술, 노래방 문화가 아니라 교육 등으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발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끝〉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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