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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우암리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멜론·참외 품종 개발을 하고 있는 김회태(68)씨는 ‘멜론박사’로 통한다.
그는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 부산시설원예시험장에서 30여 년간 멜론·참외 등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육종(育種) 연구를 해오다 지난 2006년 정년퇴임 후 8년간 이 곳에서 멜론을 재배하는 농가에 품종육성을 통해 개발한 좋은 종자를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직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퇴직 후에도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동이 고향이며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김 박사가 창원 대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멜론 덕택이다.
“10여 년 전 대산면 다람산 멜론작목반에서 시험장으로 찾아왔죠. 당시 멜론 재배를 처음 시작하면서 재배기술을 익히고 시설을 견학하기 위해서였죠.”
이후 김 박사는 대산면 멜론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순회교육을 하면서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퇴직 후에도 멜론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품종 육성(개량)기술은 평생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귀농을 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하지만, 김 박사의 경우는 특별한 준비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거주지를 옮기고,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품종을 개량해 우량품종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7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해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힘들었다. 창원시의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대산면 근처 아파트로 이사하고 비닐하우스 5개 동을 설치해 품종개발에 돌입했다. 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농림축산부 품종육성 지원 프로그램 연구비를 받은 것도 보탬이 됐다.
그는 건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지바대학 원예학부 석사, 영남대 자원과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 부산원예시험장 장장까지 역임한 멜론 연구 1세대로 대표주자이다.
그가 30여 년간 연구해 만든 품종은 멜론 40개, 참외 20개 정도이다. 일본 품종을 도입해 당도를 높여 품질을 향상시키고 키우기 쉽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 국산화시켰다.
퇴직 후에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외려 더 완벽한 품종을 개발해야겠다는 목표가 섰다.
“사실 품종을 육성해 제대로 된 상품을 개발하려면 최소 3~4년은 걸립니다. 그동안은 수익이 없죠. 저는 연금으로 생활해 큰 문제는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품종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나 목표가 없었으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그렇지만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최소 5년은 투자를 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멜론 농사를 지으면 하우스 한 동에 300만~60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지만 종자 좋은 것을 개발해 채종하면 10배 이상 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금보다 비싼 종자’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퇴직하고 생활비에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 종자개발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하우스 400~500㎡ 정도 되는 규모로 일을 벌여놓으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퇴직하기 3~4년 전부터 품종육성 방법을 배워두면 훨씬 쉽게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가 외국 종자를 수입하는 이유는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며 “많은 사람들이 종자개발에 나선다면 우리도 종자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고 이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퇴직 후 대산면에서 11개의 품종을 만들었다. 가칭 <대산 1호> ~ <대산 11호>로 이름을 붙였다. 이 중에서 농가에 2개를 보급하고 있고, 이웃 농가에서 3개 정도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미국, 중국에도 시험재배용 종자를 보냈다.
멜론 꽃의 수술을 암술에 붙이는 자화수분(제꽃가루받이)을 해 순종을 얻는 작업을 하는데 최소한 7번은 해야 쓸 만한 종자(씨앗)를 얻는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한 번 하는 데 4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 3~4년 이상은 비닐하우스에서 씨름을 해야 된다.
“실패의 연속이죠. 10개를 만들면 9개는 실패한다고 보면 됩니다. 100개 교배시켜 2~3개 쓸 만한 것이 나오면 성공입니다. 저는 확실한 것을 만들어 보급하는 게 목표입니다. 평생 일한 자부심이죠.”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품질 좋고 맛도 좋고 병해충에 강하고 재배하기 쉬운 종자를 얻으려면 이 순종들을 다시 교배해 검증을 해야 하는데 이 작업까지 모두 마무리하는 데 7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현재 목표치에 60~70% 접근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소문을 듣고 종자를 보내달라고 주문이 오기도 한다. 또 농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자주 나간다. 종자개발을 해보라고 권하지만 선뜻 나서는 농가는 없다고 한다. 수익으로 바로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꽃가루받이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종자 육성 작업을 시작하면 쉴 수가 없죠. 꽃이 피면 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바쁠 때는 오전 5시에 나와 밤 8시까지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4월에서 8월까지가 가장 바쁩니다.”
그는 최근에는 흰가루병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퇴직하기 전 시험장에서 근무할 때 흰가루병을 정복했지만 병원균이 분화를 해 발전하면서 다시 멜론을 침범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퇴직을 해서도 자신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제2의 인생을 보람 있게 꾸려가는 김 박사는 “모든 면에서 앞선 멜론 품종을 개발해 미국과 중국 등에 수출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목표이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10여 년 전 대산면 다람산 멜론작목반에서 시험장으로 찾아왔죠. 당시 멜론 재배를 처음 시작하면서 재배기술을 익히고 시설을 견학하기 위해서였죠.”
이후 김 박사는 대산면 멜론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순회교육을 하면서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퇴직 후에도 멜론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품종 육성(개량)기술은 평생 동안 활용할 수 있는 전문지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귀농을 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하지만, 김 박사의 경우는 특별한 준비는 필요치 않았다. 다만 거주지를 옮기고,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품종을 개량해 우량품종으로 만들려면 최소한 7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해 선뜻 마음을 정하기가 힘들었다. 창원시의 지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대산면 근처 아파트로 이사하고 비닐하우스 5개 동을 설치해 품종개발에 돌입했다. 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농림축산부 품종육성 지원 프로그램 연구비를 받은 것도 보탬이 됐다.
그는 건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지바대학 원예학부 석사, 영남대 자원과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농촌진흥청 원예특작과학원 부산원예시험장 장장까지 역임한 멜론 연구 1세대로 대표주자이다.
그가 30여 년간 연구해 만든 품종은 멜론 40개, 참외 20개 정도이다. 일본 품종을 도입해 당도를 높여 품질을 향상시키고 키우기 쉽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 국산화시켰다.
퇴직 후에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외려 더 완벽한 품종을 개발해야겠다는 목표가 섰다.
“사실 품종을 육성해 제대로 된 상품을 개발하려면 최소 3~4년은 걸립니다. 그동안은 수익이 없죠. 저는 연금으로 생활해 큰 문제는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품종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나 목표가 없었으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그렇지만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최소 5년은 투자를 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멜론 농사를 지으면 하우스 한 동에 300만~60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지만 종자 좋은 것을 개발해 채종하면 10배 이상 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금보다 비싼 종자’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퇴직하고 생활비에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 종자개발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하우스 400~500㎡ 정도 되는 규모로 일을 벌여놓으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퇴직하기 3~4년 전부터 품종육성 방법을 배워두면 훨씬 쉽게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가 외국 종자를 수입하는 이유는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며 “많은 사람들이 종자개발에 나선다면 우리도 종자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고 이 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퇴직 후 대산면에서 11개의 품종을 만들었다. 가칭 <대산 1호> ~ <대산 11호>로 이름을 붙였다. 이 중에서 농가에 2개를 보급하고 있고, 이웃 농가에서 3개 정도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미국, 중국에도 시험재배용 종자를 보냈다.
멜론 꽃의 수술을 암술에 붙이는 자화수분(제꽃가루받이)을 해 순종을 얻는 작업을 하는데 최소한 7번은 해야 쓸 만한 종자(씨앗)를 얻는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한 번 하는 데 4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 3~4년 이상은 비닐하우스에서 씨름을 해야 된다.
“실패의 연속이죠. 10개를 만들면 9개는 실패한다고 보면 됩니다. 100개 교배시켜 2~3개 쓸 만한 것이 나오면 성공입니다. 저는 확실한 것을 만들어 보급하는 게 목표입니다. 평생 일한 자부심이죠.”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품질 좋고 맛도 좋고 병해충에 강하고 재배하기 쉬운 종자를 얻으려면 이 순종들을 다시 교배해 검증을 해야 하는데 이 작업까지 모두 마무리하는 데 7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현재 목표치에 60~70% 접근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소문을 듣고 종자를 보내달라고 주문이 오기도 한다. 또 농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자주 나간다. 종자개발을 해보라고 권하지만 선뜻 나서는 농가는 없다고 한다. 수익으로 바로 연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꽃가루받이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종자 육성 작업을 시작하면 쉴 수가 없죠. 꽃이 피면 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바쁠 때는 오전 5시에 나와 밤 8시까지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4월에서 8월까지가 가장 바쁩니다.”
그는 최근에는 흰가루병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퇴직하기 전 시험장에서 근무할 때 흰가루병을 정복했지만 병원균이 분화를 해 발전하면서 다시 멜론을 침범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퇴직을 해서도 자신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해 제2의 인생을 보람 있게 꾸려가는 김 박사는 “모든 면에서 앞선 멜론 품종을 개발해 미국과 중국 등에 수출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목표이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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