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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박동백 창원문화원장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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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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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683
내용
[사람의 향기] 박동백 창원문화원장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발전하는 미래 열 수 있죠

-경남신문-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과거의 잘못이 미래에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50여 년간 역사와 함께한 노학자의 삶을 들여다봤다.

박동백(77) 원장은 1933년 가야시대 고분이 산재한 경북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에서 태어났다. 고분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옛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부산초급대학 1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했다. 폭격을 심하게 받던 부산을 떠나 고향으로 갔다가 인민군 치하에서 혹독한 피란생활을 했다. 의용군으로 끌려갈 뻔했지만 말라리아에 걸려 겨우 빠져나왔다.

구사일생한 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면서 미군 제7 항만사령부 의무처에 근무했다.

어느 날 하숙집 아주머니의 친척과 겸상을 하게 됐다. 이 손님은 박 원장에게 빈 밥상 위에 뭐가 보이느냐고 물었다. 박 원장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손님은 내겐 돈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라서 어려운 시기지만 지금 공부를 하면 반드시 출세한다고 조언했다. 알고 보니 그 손님은 바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부산초급대학 졸업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와 있던 서울대 사범대학 문학과 사학과에 입학했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항만사령부에서 근무하고 난 뒤 한숨도 못 자고 천막 속에서 공부했다.

195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밀양여고 교사로 부임했다. 학교에 가 보니 영어교사가 부족해 학생들에게 역사 대신 영어를 가르쳤다. 함안농고, 진해여고, 진해고 등에서 근무하다가 대학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교사생활을 접었다. 해군사관학교와 진주농림전문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마산교육대학(현 창원대학교) 설립과 함께 교수로 부임했다.

마산교대에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현장을 둘러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역사현장과 유적을 답사하는 모임인 향토사연구회를 만들었다.

학생들과 같이 솥을 가지고 다니며 경남은 물론, 전국에 안 가 본 데가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향토사연구회에 몸을 담았던 졸업생들은 지금도 모임을 갖고 있다.

“그때 제자들을 지금 만나면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자부하더라고. 교실에서만 하는 역사교육은 안 돼요. 현장에 가서 보고 조상들의 삶을 피부로 느끼게 해야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차원적으로 교육해봐야 금방 잊어버려요. 현장을 둘러보며 교육 받은 학생들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학교 교사들에게 강의하면서 ‘상감청자가 뭐냐’라는 시험문제를 낸 적이 있는데 임금이 먹던 밥그릇이라는 답을 써낸 교사가 있었다. 당장 향토사연구회 학생들을 데리고 전라도 강진 도요지에 갔다. 논밭에 깔려 있는 상감청자 파편을 두어 가마니 주워와 교사들에게 보여주면서 ‘만져 봐라. 이게 상감청자 파편이다’라고 했다.

1979년부터 20여 년간 경상남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유·무형문화재 지정을 주도했다. 오랫동안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문화재를 새로이 발견, 발굴하고 조사연구해 학계와 일반인에게 알리고 행정당국에도 그 가치와 복원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삼정자동 마애불, 불곡사 일주문, 합포성지, 박진영장군 유품, 이산성지, 회원현성지, 월영대, 고려동유적지, 마산 농청놀이, 문창제놀이, 진례산성과 구사성, 봉림사지 등 지역의 수많은 사적과 문화유적이 복원되고 문화재로 지정돼 법적인 보호를 받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문화유적의 가치를 학술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지 않고 그것이 현대의 문화생활에서 의미를 가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역민에 대한 역사교육에 힘썼다.

“일반인의 이해와 참여 없이는 문화유적도 있을 수 없어요.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연구는 현대인의 문화적 실천에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때 생명력이 있습니다.”

강의와 연구의 바쁜 시간 속에서도 1979년부터 창원박물대학을 만들어 지금까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역사교육을 하면서 지역문화재의 중요성과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역사의식을 높이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 말 창원(昌原)지명 탄생 600주년을 기념해 창원문화원에서 발간한 ‘창원600년사’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창원600년사는 1권 ‘창원의 어제’, 2권 ‘창원의 오늘 그리고 내일’로 나눠 창원의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과 창원의 옛이야기, 지명의 의미, 대한민국 환경수도 창원의 최근 모습에 이르기까지 창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집대성했다.

“1980년에 3개 면이 모여 창원시가 생겨난 탓에 역사적 바탕이 없다는 오해도 있는 데다 최근에는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많아 창원의 정체성과 그 문화유산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창원600년사’가 창원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산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창원시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정리하는 일은 지나온 세월 창원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복원시키는 일임과 동시에 향후 지역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연구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료가 부족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야 역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서남부 가야문화권 일대의 고분, 성지, 탑지, 패총 등 고고학적 유적 분포와 내용을 집대성한 ‘가야문화권 유적 정밀조사보고서’(6책)를 출간했다. 이 보고서는 각종 개발로 훼손되고 변형되어 가는 문화유적에 대한 유일한 기록보존물로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기지 못한 가야 역사를 복원하는데 기본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가야시대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10책)는 신라, 백제문화권 유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던 가야지역의 고고학적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분석 정리해 가야국의 역사적인 과정을 자체발전적으로 설명했다.

사료를 문헌기록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지만 주목 받지 못하는 물질적인 자료를 폭넓게 수용했으며 중앙중심세력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던 주변, 즉 지방의 역사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노력 또한 돋보인다.


1970년대만 해도 도자 연구는 일제시대 연구성과를 답습하는 수준이었다. 요지를 직접 조사하지도 않았고 출토 유물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다. 박 원장은 전남 강진, 경기도 여주 등의 도요지를 직접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 분석해 ‘조선도자기고’, ‘상감기법과 상감청자의 시기고’ 등 청자·백자에 관한 연구논문 4편을 발표했다. 이 연구논문은 단순히 미술사적인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청자와 백자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연구관점과 방법은 도자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도자요지들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받는 계기가 됐다.

지방의 역사적인 인물과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사적을 재조명한 것도 주목된다. 특히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경남지역 중요 인물의 사상과 당시 역사적 상황 속에 그들의 실천을 현대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지방인문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1998년 창원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곧바로 재단법인 경남문화재연구원을 설립했고 2007년부터는 창원문화원장을 맡고 있다.

평생을 역사에 몸담은 노학자에게 역사가 무엇인지 물었다.

“역사는 과거 사람들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을 분석하고 미래를 점치는 것이죠. 잘못 가다 보면 돌아오는 길이 멀어집니다. 과거를 알면 잘못 나가는 것을 일찍 차단할 수 있어요.”

그는 또 역사를 알아야 나라와 지역을 사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신채호 선생이 나라를 사랑하려면 역사를 읽어라.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역사를 읽게 하라고 했습니다. 경남 사람이 경남을 사랑하려면 경남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경남 사람이 경남을 사랑하게 하려면 경남 역사를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단합이 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글=양영석기자 yys@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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