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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를 찾아서- ‘호랑이 화가’ 윤성지씨

작성자
박주백
작성일
2010.03.1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319
내용
아틀리에를 찾아서- ‘호랑이 화가’ 윤성지씨
기운찬 붓놀림 따라 일렁이는 호랑이 기상

-경남신문-

배우지 않고도 할 줄 아는 사람을 흔히 ‘타고난 사람’이라고 한다.
지난 1968년부터 42년 동안 호랑이만 그려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346 ‘호랑이미술관’ 윤성지(67) 관장은 누구로부터 그림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작가이다.

하지만 25세 청년 때부터 불현듯 호랑이를 그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미술관에는 백두대간을 형상화한 호랑이 등 그림 작품 2000여 점과 서각 200여 점, 조각 100여 점 등이 있다.

스승이 없고,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그가 호랑이 그림에 심취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산신신앙을 공부하면서부터.

윤 관장은 “젊은 시절 산신신앙 공부를 하다 호랑이가 산신이고, 산신이 호랑이인 것을 알게됐다”며 “그때부터 자연히 호랑이에 시선이 갔고 한번 그려보자는 생각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접 봐도 반할 정도의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우리나라 산신신앙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그 신앙을 세계화시켰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25세 때 처음 그린 호랑이 그림이 자신의 최고 수작이라고 말하는 윤 관장은 자신이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문뜩문뜩 자기가 그리지 않는다고 느낀다. 알 수 없지만 그 누군가의 힘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손이 저절로 화폭으로 옮겨져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그가 호랑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있다. 바로 눈과 발톱, 이빨이다.

백수의 제왕인 호랑이가 그냥 앉아 있는 개처럼 보이거나, 멀뚱히 서 있는 소처럼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제왕으로서의 기세는 눈과 발톱, 이빨에서 형상화되고, 그림에서 제왕의 기세가 잘 나타나면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제왕적 기세가 잘 드러난 그의 작품성은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입, 현재 88올림픽기념관에 전시된 ‘맹호기상도’를 통해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그림의 기법도 기법이지만, 재료는 그 기법을 잘 표현해내는 매개체. 일반적인 물감을 쓰기도 하지만 그가 색감에서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노란색 바탕과 검은 무늬, 흰색 등 세 선의 조화이다.

노란색을 잘 내기 위해 빛깔 좋은 황토를 구해 쓰고, 흰색은 남해안 바닷가에서 구한 조개껍질을 갈아 쓰고, 검정색은 전통 가마솥에서 긁어낸 숯검정을 모아 쓴다. 그는 아무리 비싸도 그림이 살아날 수 있으면 그 재료를 구해 사용할 생각이다. 최근 그는 호랑이 눈의 위용을 살리기 위해 ‘사파이어’ 등 보석을 갈아 넣어 그리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호랑이 그림의 구상이 떠올라 작품을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다른 일로 넘어간다. 대학과 공무원 대상의 강의 요청이 빗발치고 그림과 서각작품 창작에 하루해가 짧고, 책을 쓰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 작품을 시작하면 일단 끝을 봐야 다른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황금과 병법’ ‘세상에 뭣하러 왔는지 몰라’ ‘그대 누구 가락에 춤추고 있는가’ 등 지금까지 20권이 넘는 책을 썼다. 또 ‘호랑이가 들려주는 101가지 세상 이야기’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밤낮없이 작업에만 열중했는데, 요즘은 하루에 5~8시간밖에 작업하지 못한다. 아무리 세월을 잊었다지만 늘어가는 나이테도 작업시간에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다.

창작에만 빠져 왔던 그도 여느 작가처럼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생활을 위해 돈이 필요한데 없어서 당황했고 불안했다”며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풍족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당황과 불안보다는 보람이 더 크게 작용한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보람을 느꼈다는 부분은 ‘호랑이를 그리면서 호랑이를 그냥 짐승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혼을 승화시켜 그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민족의 본모습인 호랑이를 하나라도 제대로 그려 많은 사람에 보급하면서 호랑이를 보는 사람이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인식하고, 자기 정체성 확립과 보다 나은 세계를 안내하도록 만든다는 위안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는 “호랑이 그림 애호가들이 저의 그림을 가져가면서 ‘내 모습을 가져갑니다’는 얘기를 할 때 이 일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호랑이 그림 그리기를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그는 우리나라만이 자랑할 수 있는 철학을 정립하는 게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글, 말, 노래, 춤, 집, 옷 등 많은 게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우리의 철학이 없다”면서 “남은 인생은 그림 그리기와 함께 ‘이것이 우리 것이요’라고 큰소리칠 만한 민족철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만들어 내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북스갤러리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가진 데 이어, 17일부터 이달 말까지 열리는 인제대학교 특별초청 전시회에 50여 점의 작품을 걸어 패기가 필요한 요즘 대학생들에게 호랑이 기상을 심어 줄 계획이다.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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