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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문화 선두주자 ‘종이나라박물관’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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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574
내용
종이문화 선두주자 ‘종이나라박물관’
기록 그 이상의 가치, 예술로서의 ‘종이’를 만나다

<서울문화투데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의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은 종이의 소중함 따위는 잊고 지내기 일쑤다. 거칠게 구겨지고, 쉽게 버려지는 종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찾은 곳은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종이나라박물관’이다. 그깟 종이로 만들면 무엇을, 얼마나 만들겠냐는 섣부른 판단은 그야말로 섣부르다. 종이의 역사와 종이를 이용한 다양한 예술품을 담고 있는 종이나라박물관의 이모저모를 만나자.




파피루스 VS 종이

종이나라박물관을 알기에 앞서 종이의 발명과 역사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종이나라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종이예술품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 될 수 있겠다. 종이는 서기 105년 중국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 발명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기록은 존재했는데, 그 재료는 종이가 아닌 돌이나 동물의 가죽, 뼈, 나무 등이었다. 기록을 위한 재료 중 종이와 가장 유사한 것을 꼽자면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를 들 수 있다.

파피루스는 나일강변에서 야생하는 식물로, 갈대와 비슷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을 가늘게 찢은 다음 엮어 말린 후, 이를 다시 매끄럽게 해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파피루스는 기록하기에 다른 재료들보다 편리했고, 8세기경 중국의 제지술이 유럽에 전해지기 전까지 널리 보급됐다. 종이(paper, 페이퍼)의 어원 역시 파피루스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파피루스는 엄밀히 따지자면, 섬유를 물에 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이의 기원이라고 보긴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종이는 후한 채륜에 의해 발명됐는데, 환관이던 그는 궁정에서 나무껍질, 마(麻), 넝마, 헌 어망 등을 원료로 종이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고 후한서 <환자열전(宦者列傳)>에 전한다. 당시 채륜이 발명한 제지술은 나무껍질 등 원재료를 돌절구에 짓이겨 물을 이용해 종이를 초조했는데, 이것은 현대의 초지법(종이뜨기)과 같다.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이전 종이제조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는 종이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는데, 기원전 50년 무렵 전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그렇게 본다면 채륜은 종이를 발명한 사람이기 보다는 주원료인 마를 이용해 다른 재료들을 섞어 새로운 종이를 개발해낸 인물인 것이다.

한국의 종이역사

채륜의 종이로부터 시작된 제지술은 주위의 다른 나라들로 빠르게 전파됐다. 한국은 4~7세기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610년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일본에 종이 제조기술을 전수했다는 것이다. 또한 4세기 후반 백제에서 사서(史書) 편찬이 이뤄졌는데, 이를 통해 그 무렵 종이제조기술이 도입됐으리라 본다.

우리나라 종이는 질이 좋기로 유명해 중국과 일본에서 귀하게 여겼다. 점점 발전을 거듭하며 급기야는 한지를 만들어냈고, 고려 때는 제지술의 원조국인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활자와 서적 등 조선의 문화재들을 약탈해가면서 제지공도 납치해 규슈 지방에 정착시켰고, 제지술을 발전시켰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종이의 쓰임을 보면 단지 기록을 위한 재료만이 아닌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문방구부터 그릇, 도기, 바구니 심지어 옷과 신발, 가구도 종이로 만들어졌다. 지금의 종이는 어떠한가. 종이 없는 하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많은 정보들이 디지털화되면서 종이의 사용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한 이들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때는 여지없이 종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수많은 예술작품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종이의 우수성과 종이를 재료로 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섬세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종이나라박물관 투어에 나섰다.

종이의 변신은 무죄

종이나라박물관은 한국 종이문화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견학과 현장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종이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9년 12월 설립됐다. 전시관은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는데, 1전시관과 2전시관은 종이나라빌딩 3층에 위치해 있다. 또한 특별전시관인 별관은 건물 1층에 위치, 현재는 러시아 극동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7명의 러시아작가들을 한국에 초대해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전시관도 3개뿐이지만 전시관의 크기 역시 넓지 않아 체험학습을 겸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둘러보기는 안성맞춤이다. 물론 종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종이로 만든 특별한 예술품을 만나고 싶은 이들이라면 누구든 방문해도 좋다.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내리면 눈에 바로 띄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면 미리 체험프로그램을 신청해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1전시관은 종이문화의 발전사를 담고 있다. 2세기에서 7세기까지 종이공예 유물에서 현대 미술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말 위에 얹는 안장이나 색실을 담아둔 색실첩, 가구장에 이르기까지 그 옛날 종이가 서민들의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종이문화예술작품공모대전을 통해 발굴된 수상작 및 우수작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들이 종이의 질감과 색감을 살려내 만들어낸 다양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전시관은 1전시관과 연결돼 있다. 이 공간은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만든 작품부터 각 종이예술분야 전문가들의 종이조형작품까지 함께 전시돼 있다. 종이의 기본인 접기부터 조각미술, 색지공예, 지승공예, 한지그림, 스크랩북킹, 클레이아트 등 종이를 이용해 이렇게 많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별전시관은 보통 그 이름대로 상설전이 아닌 특별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현재는 러시아 극동지부 종이문화교육원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러시아에서는 현지 유치원과 초·중등 교사, 미술대학 교수들의 요청으로 각계각층의 교육기관에 한국종이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해 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러시아 극동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7명의 러시아작가들을 직접 한국에 초대해 5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한국작가들의 작품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관람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입실) 관람가능하며, 매주 일요일과 국가공휴일은 휴관한다.

종이나라박물관에서는 전시만큼이나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연령 및 대상에 따라 종이접기 영재교실, 한지공예 등의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고 있으며, 20~30명 규모의 단체나 개인으로 예약할 경우, 이용 가능하다. 이 외에도 종이접기를 비롯해 지승공예, 지호공예, 색지공예, 순은공예 등 종이미술과 관련된 전문지도자 양성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한편, 매년 10월경 종이나라박물관은 종이문화예술작품 공모대전을 실시한다. 이는 종이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종이문화예술산업 발전을 위해 신진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으로,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다.

한민족은 자랑할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닥을 원료로 한 한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흡수성은 말할 것이 없고, 탄력성과 내구성은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의 종이는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색지와 봉투를 처음 만들어낸 것 역시 우리 민족이다. 그 뿐인가. 우리 종이는 단단한 성질 때문에 몇 겹을 합치면 총알도 뚫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이의 우수성을 잊고 지낸다. 한국박물관학회 이종선 회장의 말처럼, 종이나라박물관의 몫은 다름 아니다. 우리 종이와 종이산업의 면모를 되살리고, 앞으로의 좌표를 세우는 일에 고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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