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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으로 바뀐 미술관 그속에 민중예술 세웠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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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98
내용

정원을 걸으면서 숲의 정취도 만끽하고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꽃도 보고. 정원은 '특별한' 곳이 아닌 '편안한' 곳이다.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이 '배움의 정원'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서 배움이란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총감독·작가·시민 등이 모름을 인정하고 앎도 비우는, 즉 무지에서 현대미술을 즐겨보자는 것이다. 마치 정원에 온 것처럼.

독일 출신의 로저 M. 뷔르겔(Roger M. Buergel) 전시감독은 한국, 특히 부산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이다. 부산은 24시간 공사 중이고, 부산시립미술관은 벡스코와 세계 최대의 백화점에 끼여 제대로 된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것에 맞서(?) 그는 아예 부산시립미술관을 공사장처럼 꾸며버렸다.

부산시립미술관 모습. 건물 외벽이 공사장처럼 꾸며져 있다.

'공사 중인데, 들어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술관 외부는 파이프 구조물과 검은 가림막으로 포장돼 있고, 내부는 검은 고무 매트가 지그재그로 깔려 있었다. 탁한 고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블랙카펫(?)을 딛고 마주한 작품은 성효숙 작가의 '새벽 3시'. 낡을 대로 낡아 흐물흐물해진 신발들이 둥근 원을 그리고 있고 그 위에 옛 장례식이나 마당놀이에 쓰였던 색색의 지화(紙花)가 있다. 신발의 주인은 한진중공업의 해고 노동자들이고, 꽃은 그들과 성효숙 작가가 함께 만든 것이다. 2층에 설치된 오스트리아 작가 이네스 도우약의 '오뜨 꾸뛰르/불'도 섬유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을 재현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존 라이크만 교수(미술사)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새벽 3시'를 언급하며 "민중예술이 '멸종' 단계에 이른 현재, 비엔날레를 통해 노동예술을 선보이면서 소수 엘리트 예술이 아닌 공공 예술·참여 예술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성효숙 작가의 '새벽 3시'. 작가는 한진의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신발 제공을 요청했다.

2층에 올라가면 1970~198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노원희·김용익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노원희 작가는 1980년 민중미술 운동단체 '현실과 발언'의 멤버로 활동하며 참여 미술가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1980년대 초반의 길거리를 그린 그림과 함께 최근 작업한 작은 회화 연작을 공개했다.

잊힌 민중미술을 현대 미술의 한복판으로 끌어낸 부산비엔날레에는 '소통과 협업'을 중요시한 작품도 많았다. 올해 초 부산비엔날레는 '배움위원회'를 만들어 전시기획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했고 50여 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부산시립미술관을 마치 공사 중인 건물처럼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작가 벤 카인·리카르도 바스바움·이모진 스티드월시 등과 협업을 했다.

'한국 집은 뭐지?' 메리 엘렌 캐롤의 'No.18'은 '전세'라는 독특한 한국 거주문화에 집중했다. 그는 부산에서 오래된 동구 좌천동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좌천동에서 벌어지는 모든 공식·비공식적 활동이 미술관과 인터넷으로 방송된다. 관람객은 직접 그 아파트에 찾아가 작가를 만날 수도 있다. 이모진 스티드월시는 배움위원회의 손에 이끌려 김해에 있는 굿당을 가게 됐는데, 무당을 만나 찍은 굿 장면과 살풀이 등을 세 개의 비디오 프로젝션과 다양한 사물로 나타냈다. 그는 "무당의 얼굴은 매우 억세고 강하며 굳어 있었다"는 공통점을 흥미롭게 말하기도 했다.

노재운 작 '대나무 숲의 유령들'.

이 밖에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함경아 작가의 '오데사의 계단'과 노재운 작가의 '대나무 숲의 유령들'이다. 전시실 한가운데 5층은 훨씬 넘는 계단이 자리 잡고, 그 위에 골프화·일본산 비데·파이프·쇼핑카트 등이 분란하게 놓여 있다. 작가는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오데사의 민중들이 차르 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곳, '계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연희동 빌라를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가 버려진 쓰레기를 죄다 모아 재배치했다. 작품을 보니 1905년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된 전함 포템킨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묘하게 연결된다.

노재운 작가는 금속-거울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공간을 전시실 한편에 만들었다. 거울에 반사된 관람객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방향성을 잃기도 하지만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11월 24일까지. 일반 7000원, 특별전 무료. 문의 051-503-6579.

 

출처: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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