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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손잡은 예술가…빛바랜 도시가 색을 입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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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174
내용

[도시, 문화 옷 입고 재생을 꿈꾸다] (2) 예술가가 이끌고 관이 지원한, 서울과 인천

 

"자발적 주민참여 없이는 문화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은 어렵다." 국내에서 이 명제를 증명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 문래동 문래예술창작촌과 인천아트플랫폼이 그곳이다. 일방적인 관 주도로 이뤄지는 창원시 마산지역 문화예술을 활용한 도시재생과는 첫 단추부터 다르다. 그만큼 남다른 시사점을 가졌다.

뉴욕 브롱크스 거리. 흔히 흑인 할렘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현대 미술을 발생시킨 창조의 땅이기도 하다. 지난 1960년대 이 지역에 살던 흑인들이 벽이나 공장 셔터에 그린 낙서에서 발전한 그라피티(graffiti) 때문이다. 그라피티는 향후 미술계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이 거리 예술이 지닌 자유분방함과 솔직 발랄함은 뉴욕 사람들 마음을 매료시켰다. 장 미셸 바스키아 같은 젊은 예술가들이 주목받으면서 브롱크스는 일약 예술의 거리로 부상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한국의 브롱크스로 불리는 이곳엔 회색 창연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참신한 각종 벽화와 그라피티 작품들이 즐비하다.

원래 이곳은 1960년대 산업화 시절 수많은 철제 상가와 공장들로 붐비던 서울 내 대표 공업 단지였다. 1970~80년대에는 철공소와 철제로 호황을 이뤘다. 지금은 몇 안 되는 철공소들이 간간이 "땅! 땅!" 망치 소리를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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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문래예술창작촌 모습. 철제상가와 공장들 속에 자리잡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이채롭다.  

 

 

 

문래동에 재미난 변화의 바람이 분 건 90년대 말부터다.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 사업 등이 시행되면서 기계 철강 산업의 중심부였던 이곳 철공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유휴시설이 늘고 비어 있는 공장은 음험하기 이를 데 없어, 야심한 밤 종종 비행청소년들의 아지트로도 이용됐다.

이렇게 낙후된 공장 지대에 새로운 입주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2003년 즈음부터 문래동 철제상가 2, 3층에 있는 빈 사무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홍익대 앞이나 대학로 등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눈에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문래동이 들어온 것이다. 철공소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작업 중에 생기는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 또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예술가들은 철공소 벽면에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넣고, 아기자기한 장식이 보기 좋은 간판들로 자신들의 작업실을 알렸다. 그렇게 문래동은 '한국판 브롱크스'로 탈바꿈해갔다.

젊은 예술가들은 그들이 홍대 앞에서, 대학로에서 그랬듯이 지역 주민·이웃 예술인과 교감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문래동', '물레아트페스티벌' 같은 주민참여형 행사들을 만들어서다. 이들 행사는 지자체 도움 없이 모두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으고 기획해 진행됐다.

처음에는 예술인들의 진입을 그리 반갑지 않게 여기던 주민들도 이들이 문화예술을 활용해 다양한 소통 창구를 열자 나중에는 적극 지지자로 변해갔다. 예술인들과 그들이 입주한 철공소 사장들 사이에 산악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관계가 돈독해져 갔다. 쇠락한 지역 경제가 조금씩 꿈틀거리고, 동네 전체에 활기도 띠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문래동 전반이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자 지자체에서 지원에 나섰다. 서울시는 문래동의 한 철재 공장 부지를 사들여 지난 2010년 '문래예술공장'이라는 이름의 예술창작지원공간을 신축했다. 덕분에 문래예술공장은 지하 1층, 지상 4층에 전체면적 2804.18㎡(849.88평) 규모로, 다목적 발표장 겸 공연장(박스 시어터), 전시실(스튜디오 M30, 포켓 갤러리)을 비롯해 공동 작업실, 녹음실, 영상편집실 등 다양한 장비와 공간을 갖추게 됐다.

종래 서울시 예술창작 지원이 작업장이나 발표장과 같은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과 예술가 발굴·육성을 위한 소프트웨어적 지원으로 양분돼 온 데 반해 문래예술공장은 이 둘을 융합해 예술작품의 탄생에서 성장까지 책임지는 새로운 개념의 지원 공간으로 완성됐다. 시각예술, 공연, 음악, 영상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작업실을 통해 제작한 작품을 전시 및 상연까지 가능하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제공한다.

문래예술공장을 운영하는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문래창작촌은 관 주도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라며 "예술인들의 자발적 유입과 지역 주민과의 융화 노력으로 지역 여건에 맞게 자생적으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10월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를 문화공간인 미술창작센터로 조성한 국내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건축 문화재와 1930~40년대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된 지역 특성을 살려 창작·유통·즐김의 순환 구조를 갖는 미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도심 재생 프로젝트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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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물의 외형을 그대로 살려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든 인천 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은 1999년부터 진행된 장기프로젝트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장기간 주인 없이 방치됐던 해안동 일대 근대건축물들은 지역 슬럼화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레지던스 개념조차 생소했을 무렵 예술가들은 인천시에 문화공간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건축가 황순우는 이 건물들이 가진 확장성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인천만이 가진 지역정체성이 이 일대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중구 일대는 국내 최초로 근대적 도시계획을 도입해 시행한 곳으로 1800년대 말 외국인 거주 지역 설치와 함께 계획된 가구와 획지, 도로의 원형이 보전돼 있었다. 황순우는 그 흔적이 사라짐으로써 지역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그는 시에 기존 건물을 이용한 문화시설을 매개로 도시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는 제안을 받아들여 2000년 지구단위 계획 용역을 진행했다. 황순우는 이후 지구단위 계획, 문화공간 건립 등 설계 이전부터 프로젝트 전반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그는 지역건축물을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을 중점으로 했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옛 건물 형태나 역사적 공간을 복구하기 위한 기준을 지정하는 주변 지역 정비계획 또한 착실히 세워나갔다.

인천시는 이를 바탕으로 2003년 근대 건축물 복원에 착수한다. 1886년 세워진 일본우선주식회사 사옥을 비롯해 대한통운 창고, 대진상사, 삼우인쇄소, 양문교회 등 모두 13개 근대적 유형을 가진 건물을 최대한 외형을 살려 개축했다. 덕분에 5600㎡ 면적에 창작스튜디오, 아카이브, 교육관, 전시장, 교육관 등이 건립됐다. 예술가들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스튜디오·공방 20곳과 외국작가 및 큐레이터가 묵을 게스트 하우스 9곳도 만들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은 독보적인 하드웨어를 바탕삼아 레지던스를 중심으로 미술·문학·공연 등 다양한 장르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에 전념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국내외 창작 교류의 허브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 정주해 1년 내내 전시와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40여 명의 국내외 입주 작가들이 3개월~1년 단위로 레지던스가 치러진다.

입주작가와 지역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수반된다.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좌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시민 문화 향유 수준을 높이도록 한다.

입주작가들로 하여금 예술 창작 활동 과정을 기록해 보관하는 아카이빙 프로그램은 지식과 자료의 집적을 꾀해 문화 허브로서 역할과 기능을 뒷받침한다.

 

 

"뭘 위해 운영되어야 하나 명확한 목적의식 있어야"

"인천아트플랫폼은 개관 15년 전부터 지자체와 문화예술인, 시민단체가 공간활용 방안을 두고 논의를 했습니다. 시민들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공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이를 잘 파악해 낼 줄 아는 전문인력이 꼭 필요합니다."

문화예술을 활용한 도심재생의 성공모델로 평가받는 인천아트플랫폼 이승미(52·사진) 관장은 지자체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연고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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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은 "인천아트플랫폼 같은 공간은 다른데도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매우 곤란하다"며 "이 공간이 지역에 왜 필요하고 무엇을 위해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목표와 임무가 운영 주체 내부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레지던시 공간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입주작가와 작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며 "전국에 레저던시 기관이 100여 개 되는데 그 속에서 이 공간이 어떤 위치에 있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이기주의와 연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면서 "인천아트플랫폼은 지역 할당으로 젊은 작가 등 25~30% 정도를 선발하고, 나머지는 국내 20~30:1, 해외 40:1 등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한다"고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주민과 손잡은 예술가…빛바랜 도시가 색을 입었다

경남도민일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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